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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적 야구단, 그들의 진짜 뒷 이야기

야구,냉정과 열정 2011. 8. 8. 21:55

부제 - 1회말, 진심과 승부수는 언젠가 통한다. 

공을 피하려고 했는데 맞았다. 그 때는 야구가 설익었을 때다. 독산 카우보이스 선수의 대답이다. 2011년 8월 7일 하이트볼 챔피언십에서 천하무적 야구단의 첫 상대였던 팀이 바로 독산 카우보이스. 카우보이스 덕아웃에서 게임 전 선발 투수에게 물었다. 게임 부담에 대한 질문이었다. 대답은,

“게임에 대한 부담은 많지 않다.”

의외였다. 잠시 후, 재차 물었다. 일방적인 응원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당한 관중들이 천하무적 야구단을 응원하고 있었다. 뒤에 관중을 등지고 있을 무렵, 다시 한 번 표정을 읽었다.

대답은 같았다. “팀이 누구던 상관없다. 마운드에서 누구보다 자신있다.” 대답이 끝날 무렵, 마운드로 달려나갔다. 독기 어린 표정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내가 최고라는 표정은 담겨 있었다. 위기가 왔을 때에도 문제 없어 보였다. 바깥쪽 슬라이더였다. 김창열에게 그 공으로 승부를 걸었다. 게임 후 카우보이스 선발투수는 "정말 자신있는 공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문제는 결국 터졌다. 그 바깥쪽 슬라이더, 김창열의 손에서 터졌다. 

제대로 받아쳤다. 투수는 모자를 꾹 눌러쓸 수 밖에 없었다. 상대 투수 김상겸은 “정말 실투가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 공은 바깥쪽 꽉찬 볼이었다.

천하무적 야구단과 독산카우보이스의 게임은 박빙이었다. 각팀의 분위기 반등도 충분히 가능했고 실제로 있었다. 게임 후, 카우보이스 김상겸은 김창열 이후 R.ef 출신 성대현, 그에게 수가 읽히는 안타를 맞은 그 때부터 쉽지 않았다고 했다. 게임은 9대 8, 막판 카우보이스의 분전이 있었지만, 천하무적 야구단이 조금 더 잘했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런 말을 했다. 승부는 냉혹하다고, 더불어 냉정하다고. 물론 다른 누군가는 이런 말도 했다. 승자와 패자는 중요하지 않다고.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따뜻한 경쟁이라고. 천하무적 야구단과 독산 카우보이스와의 따뜻했던 경쟁. 이제야 소개한다.


(천하무적 야구단의 이야기, 그리고 그와 맞붙었던 이들의 이야기. 하이트볼 챔피언십 사회인 야구 8월 7일의 게임. 가수 김창열과 개그맨 한민관을 만났다. 사진-스포티즌)

(미디어 이닝, 이하 이닝) 반갑다. 사회인 야구를 예전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들었다. 본인이 느끼는 사회인 야구의 저변, 지금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김창열(이하 창열) 어렵다. 그래서 사실 가장 아쉽다. 늘 같은 이야기를 한다. 월드컵이 열렸을 때, 축구붐도 일어나지 않았나, 천하무적 야구단이 인기 있었을 때, 야구붐이 어느 정도 일어났다. 그런데, 이렇다는 것은... 

이닝 당시 야구붐으로 꿈의 구장 프로젝트가 이야기되지 않았나

창열 맞다. 그랬으면 그 때 꿈의 구장 건립은 마무리 되어야 했다.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 부분에 조금이라도 일조하고 싶어 팀원들과 이야기한다. 일종의 ‘꿈의 구장 재건립 프로젝트 구체화’다.

한민관(이하 민관) (웃음) 꿈의 구장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우리가 멀리 원정가서 야구할 때 더 많이 느낀다. 몇몇 지방을 가보면 시설 좋지 않은 곳이 정말 여럿 있다. 배수가 안 되는 것은 기본이고, 불규칙 바운드로 몸이 상하기 십상이었다. 여기저기 가봤다. 이른바 비방용 게임이라고 하지 않나. 본방용은 해피하지만, 비방용은 현실이었다. 인프라가 이 정도일줄 몰랐다.

이닝 스케줄을 조정해서 갔다는 말은 무엇인가

민관 주말에 스케줄이 있을 때, 조정해가면서 야구단에 참여했었다. 사회인 야구선수들 고충이 정말 와닿을 때가 많다. 방송 때는 잘 몰랐다. 열정에 지원이 못 따라가고 있다.

2009년 크리스마스 이브로 기억한다. 흰 눈이 내렸는데, 야구장이 유일하게 남아있던 곳이 서울 외곽에 있는 간이 야구장이었다. 어린이 야구장 규모에 시설은 열악하기 그지 없었다. 최부장님의 끝내기 안타와 다이빙 캐취, 난 행복한 솔로였다. 누군가 미쳤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난 아직도 그 때의 승리를 기억한다. 물론, 꿈의 구장에서 야구하고 싶은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녹색 그라운드가 펼쳐진 바로 그 꿈의 구장 말이다. (사회인 야구 선수 최준서님)


("코치님, 감독님이 아닌 여기서는 그냥 경필이다." 두산에서 뛰었던 이경필의 유니폼에는 Feel이라고 적혀있다. 마리오는 "필 가는대로 우리도 여기까지 온 모양이다."라며 웃어 보였다. 사진-스포티즌) 

이닝 천하무적 야구단, 쇼로 끝날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창열 알고 있다. 내실을 다지려고 한다. 천하무적 야구단이 끝나고, 고민을 많이했다. 여기저기 자문을 구하고 있는데, 진행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민관 쇼가 아닌 리얼이었다. 삼진을 당하는 것은 각본을 짜서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안타치고, 타구를 잡고 훈련을 하는 모습들은 각본이 아닌 땀이었다. 우리가 야구를 잘했던 이들은 아니었다. 창피하지만 그 때 우리가 잘할 수 있던 것들은 땀 흘리며 뛰는 것, 그거 하나였다. 그 부분들이 폄하된다면 조금 슬프다.

이닝 창열씨에게 묻는다. 꿈의 구장 관련 지원책을 얘기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움직임이고 있나

창열 지금 진행되고 있는 하이트볼 챔피언십에서 우승한다면 상금은 전액 기부할 생각이다. (주변에서 웃자) 물론 쟁쟁한 팀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회 우승 상금이 역대 최대라고 들었다. 욕심 한 번 내보겠다. 9월에서 10월 사이에는 천하무적 야구단 에세이집이 발간될 예정이다. 그 책의 수익금 역시 전액 기부할 생각이다.

이닝 전액 기부라, 꿈의 구장에 기부한다는 말인가

창열 (끄덕이며) 꿈의 구장이다. 이천 시민들은 물론 당시 함께했던 이들이 늘 생각난다. 우리들이 모였다는 것에 대한 쉼표도 찍고 싶다. 알아달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말 천하무적 야구단이 진심이었다는 것은 조금 전해드리고 싶다. 방송사와 해당 지자체가 프로그램 종영과 함께 손을 떼서 개인적으로도 속상하다.

민관 응원해주신 분들께 그래서 죄송하다. 더욱 책에 신경쓰고 있는 이유다. 방송에서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 방송 제작과정들, 그 이야기를 봐달라고 말씀드리지는 않겠다. 다만 공감대는 형성해드리고 싶다.  

천하무적 야구단 김창열의 등번호는 18번이다. “야구단에서 18번은 에이스를 뜻하는 번호로도 이야기되었다.” 해태와 선동렬을 좋아했던 한민관의 말이다. 8월 7일 하이트배에서 김창열은 팀 내 3번으로 등장, 그라운드 홈런을 기록했다. 대회 1호 그라운드 홈런이었다. 팀 동료 조연우와 마리오는 “에이스 잘한다.”라는 말로 답했다. 이 홈런을 중심으로,

천하무적 야구단은 1회부터 기선제압에 성공했다. 천하무적 야구단이 인기가 무르익을 때, 사회인 야구장은 예전보다 많아졌다. 사회인 야구 선수 박성준씨는 “지자체에 이야기할 수 있는 기선제압 카드가 천하무적 야구단이었다.”고 말한다. 김창열은 번트를 대지 않겠다고 당일 게임에서 말했다. 로이스터 전 롯데 감독은 “강공이 기선제압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김창열의 노림수는 그 날 보기좋게 먹혔다.

(게임을 점검하는 시간, 김창열은 3루수, 마리오는 중견수 글러브를 매만진다. 서로 어떻게 게임을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서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민관의 대타 기용이 이 때 잠깐 언급되었다. 사진-스포티즌)

창열 (조빈의 내야 플라이가 터지자) 아오, 정말 (웃음) 사실 승부에 집착하는 모습, 우리도 물론 있다. 순수하게 즐기는 문화로 가고 싶다. 그런데, 즐기면서 이기지 않으면 팀 내 구심점이 사라지더라. 연예인이니까 못해라는 말도 나온다. 천하무적 야구단이 연예인 야구단이라서 누가 봐준다, 누가 져준다라는 이야기 역시 들었다. 그래서 쉬지 않는 것 뿐이다. 즐기면서 잘하기란 쉽지 않겠지만, 그래보고 싶다. 욕심 좀 내보고 싶다. 

이닝 연예인들 팀이라서 좋은 점과 어려운 점은 과연 무엇인가

창열 좋은 점이라면 구장을 일반인 분들보다 손쉽게 대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연예인이기 때문에 상대팀에서 시합을 하자고 의견을 내주시기도 하고, 구장을 빌려서 우리쪽에 연락도 주신다. 주변에 어떻게 보면 죄송스럽다. 어려운 점이라면,

민관 (웃음) 야구 선수들과도 친해질 수 있는 자리가 있다. 연예인들이 선수들과 처한 상황이 비슷한 부분이 있다. 천하무적 야구단을 하면서 선수들과 친해질 자리가 생겼다. KIA의 이범호, 이용규, 윤석민 같은 선수들이 대표적이다. 범호는 일본에서 힘들었을 때, “야구 잘하고 있냐”고, 묻곤 했다. 본인이 힘들 때에도 야구하다 지치지 말라고 격려도 해주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고 싶더라

이닝 아, 그러고보니 민관씨는 타이거즈 팬이라고

민관 선수 김성한과 선수 선동렬을 좋아했다. 집은 광주 송정이었는데, 무등 경기장에 늘 버스를 탔다. 저녁이 무르익는 7회쯤에 버스는 당도한다. 7회 이후, 도착하면 경기장 주변은 술렁임으로 나를 맞이했다. 그 기분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하다.

이닝 무등구장과 사직 야구장의 공통점, 경기장 주변에 들어서면 무언가에 강하게 이끌려 간다는 점인 것 같더라

민관 나도 그랬다. 무등 구장밖으로 함성이 새어나오곤 했다. 그 안에 누군가의 아버지도 계셨고, 어머니, 삼촌들, 친구들도 있었다. 함성속에 몸을 숙이면 비용은 공짜였다. 물론 요즘은 그런 재미가 사라졌다더라. 그러나 그 때 추억이 지금의 나를 꿈을 키웠고, 천하무적 야구단과 함께하게 만들었다. 이제, 내가 누군가에게 꿈이 되고 싶다는 바람도 갖고 있다.

웰릭스는 인천에서 야구를 사랑하는 이들이 모인 팀이다. 현대 유니콘스가 인천에 있던 시절, 하이텔 동호회에서 뭉쳤다. 당시에는 두산, 롯데를 비롯한 모든 팀마다 사회인 야구팀이 있었다. 그 때 팀 이름은 뿔스였다. 유니콘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정했다. 그러나 현대가 수원으로 연고지를 옮겼다. 현대 첫 우승 때에도 초대를 받았고, 당시 선수였던 최원호 LG 코치와 부등켜 울었다. 배신감이 너무 커서 매일을 술로 보냈다. 팀원들이 모여 유니폼을 불태웠고, 팀원들이 응원하는 팀들은 그렇게 찢기고 불태워졌다. 현대는 유니콘을 팔았지만, 우리는 꿈이 팔렸다. 그래서 야구는 누군가에게 꿈이고, 분신이며 삶이다. (인천을 사랑하는 야구팀 웰릭스 감독 원종인)

이닝 라인업에 없다. 오늘은 게임에 언제 등장하나. 민관씨에게 묻는 말이다.

민관 (웃음) 사실 야구를 잘해서, 이겨야한다는 생각이 나는 많이 없다. 주전으로 오늘 나오지 못했지만, 이 곳에서 사람을 만나러 오기에 그저 만족한다. (웃음) 창열이형이 20대 0으로 이길 때, 들어가라고 했다. 그런데 오늘 컨디션이 굉장히 좋아서, 형들이 한 번 쓸 것 같은데, 이따 지켜봐달라.

(편집자 주 - 천하무적 야구단이 독산 카우보이즈를 8대 3으로 이기고 있던 4회, 한민관은 대타로 등장, 1타점 안타를 뽑아냈다. 수비 당시 우익수로 들어갔다.)


(천하무적 야구단의 상대팀, 독산 카우보이즈, 이번 대회의 최대 복병 중 한 팀으로 꼽혔다. 이 팀의 처음부터 끝까지 싸인은 배려와 꿈이었다. 대회 취지와 맞물리던 그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있고, 감동적이었다. 맨 앞줄 좌측이 이동훈 감독. 사진-스포티즌)

조연우가 얼굴에 썬크림을 잔뜩 발랐다. 드라마 출연할 때, 얼굴이 타면 화면에 제대로 나오기 어렵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독산동 카우보이즈와 천하무적 야구단은 처음에는 손쉽게 끝나는 듯 했다. 9대 3으로 천무팀이 이기고 있을 무렵만 해도 그랬다. 그러나 게임은 막판까지 손에 땀을 쥐었다. 9대 8로 그리고 끝났다.

파인애플 배달원이던 선수가 구원 투수였다. 문제는 당일 업무가 많았다는 점일게다. 등판이 그래서 어려웠다. 게임이 끝나고, 상대팀이던 독산 카우보이즈 감독 이동훈씨는 충분히 멋진 남자였다. 천하무적 야구단이 하이파이브를 할 무렵, 그들 역시 같이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었다. 많은 관중들은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뒤에 수 많은 관중을 등지고 있을 때였다. 패자의 분위기도 없었다. 천하무적 야구단의 조연우는 “그들 역시 오늘 게임의 승자”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접전과 맞물린 상황, 페어플레이에 고맙다는 진심을 그렇게 전했다.

게임 후, 독산 카우보이스를 다시 만났다. 등 뒤에 관중들이 한아름 있었다. 게임 전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카우보이스만을 향한 박수와 환호가 있었다는 부분이다.  

이동훈씨의 대답은 이 대회와 이 게임에 임하는 이들의 마음 가짐을 고스란히 드러냈던 대답이다. 끝으로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친다.

“게임의 마지막 타자였던 친구, 초등학교 때까지 야구를 했던 친구라 마지막 이닝인 4회 2아웃, 2루에 주자가 있어서 한 번 더 믿었다. 게임을 져서 아쉬운 것은 아니다. 전주에서 올라온 친구에게 미안해서 그렇다. 대회 때문에 박승주라는 친구가 정말 어렵게 참여했다.

아버님께서 편찮으셔서 간병하던 중, 대회 짬을 내서 힘들게 참여한 친구였다. 2아웃 당시 동점을 만들고, 대타로 승주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승주에게 끝내보라는 일종의 나와 우리 팀의 바램이었다. 그런데 게임이 끝나서 많이 미안하더라. 우리의 꿈이자 바램은 그래서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음에 잘해보자라는 말, 뒤늦게 꺼낸다. 힘내라, 카우보이스”

PS - 하이트볼 챔피언십 사회인 야구대회는 게임 시간은 2시간으로 제한된다. 2시간이 넘으면 새로운 이닝에 들어갈 수 없기에 게임은 4회까지 치러졌다. 누군가의 1회 말, 하이트볼 챔피언십 사회인 야구 대회는 그렇게 1회말을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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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남욱,
nathan53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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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쿼터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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