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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쏘다] 이진영. 그리고 SK 외야수 이명기 (하)

위클리 이닝 2009. 12. 7. 12:11

김성근 감독은 고지에서 오키나와로 이동하기 직전에 "오른손 중장거리 타자 외야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중장거리 우타자로 박재홍이 유일한 상황. 그를 제외한 박재상과 조동화는 왼쪽 타석에 들어선다. 박재홍을 대신할 우타 유망주들이 있는 상황도 아니다. 김용우, 권영진, 김기현, 오현근, 이명기 등 1.5군 및 2군 선수들 대개 좌투좌타들이다.

김성근 감독은 기침을 한 번 하며 선수들에게 더블 포지션을 다시 한 번 주문했다. 2008년 신인 모창민을 비롯해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 유격수 김동건, 박정권, 윤상균에게까지 내외야 겸엽을 주문했다. "조금씩 예상을 했기 때문에 사실 별 어려움은 없다." 선수들이 밝힌 것과 다르게 일본 시코쿠섬 고지현에서 스프링캠프를 지휘 중이던 김 감독은 “(김)강민이도 없고 (이)진영이 만한 애가 없다. 메울 아이들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명기, 김기현 등 지난해 말부터 집중 조련했던 젊은 선수들이 부상으로 정상훈련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선수들이 그렇게 못 따라 오느냐”라고 묻자 김성근 감독은 “아이들은 열심히 하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진짜 선수가 없는 것이 아니라 마무리 훈련에서 옥석을 고르기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훈련하고 있는 SK 선수들 중 일부는 그런 이야기를 한다. "원래는 일본에서 훈련이 끝나면 탈락자 명단이 올라오기로 했었다. 매주마다 탈락자는 한국으로 귀국을 한다." 선수들이 부상을 숨기고 강도 높게 훈련을 '아프게' 소화하면서 구단에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라는 부분이었다. SK의 무한 경쟁체제를 그대로 드러낸 부분이기도 하다.

SK 와이번스는 2009년 2월 16일 일본 고지에서 실시된 1차 스프링캠프를 마친 지난 15일 투수 백인식과 외야수 이명기 2명을 귀국시켰다고 밝혔다. 2년차 우완 투수 백인식은 자체 평가전을 통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SK의 비밀 병기로 기대받았지만 최근 피칭 도중 갑작스런 통증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인천고를 졸업. SK에 입단한 좌투좌타의 외야수 이명기 역시 2009 시즌 외야 요원으로 기대를 받았지만 조기 귀국했다. 고교시절부터 말썽이던 팔꿈치 덕분에 훈련의 마지막을 소화하지 못한 것이다. "수술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 이명기는 현재 팔꿈치 주변이 구부러지지 않을 정도로 팔이 부어있는 상태로 알려졌다. 기대주로 미리 인터뷰를 했던 이명기. 그의 이야기를 지금에서야 공개한다. 


이진영. 그리고 SK 외야수 이명기 (하)

일본 고지에서 경험한 마무리 훈련은 강도 높기로 유명하다. SK의 모든 훈련 시스템 자체가 그러하겠지만.

마무리 훈련은 일본 고지에서 아침 8시에 나가서 저녁 5시에 끝냈다. 밥 먹는 시간 20분을 제외하면 5시까지 계속 로테이션이다. 숙소로 복귀해서 저녁 먹고 30분 쉬고, 7시쯤 야간 훈련을 나간다. 7시부터 9시까지 야간 훈련으로 방망이를 친다. 간식 먹고 치료 받으면 10시가 조금 넘는다. 취침시간은 11시. 캠프 가서 사실 하루 쉬었다. 훈련을 18일인가 19일 정도 했는데 손바닥이 다치지 않는데 나중에는 피가 터졌다. 방망이를 휘두르는지 뭘 휘두르는지 모를 정도로 정말 많이 쳤다.

(웃음) 밥은 먹고 다녔다. 식단을 궁금해하는 분들이 계시더라.

식사는 삼식이나 오식은 아니고, 아침 간식 포함해서 사식을 했다. 아침 8시에 일어나서 9시까지 야구장에 나가야 된다. 물론 피곤해서 선수들도 아침에 더 자고 싶지 않겠는가. 잠 10분 더 자고, 밥을 10분 안 먹으면 된다고 생각들을 하더라. 그래서 아침은 대충 먹는다. 점심은 빵이랑 우동 같은 것을 먹는다. 아. 아침에 붕대를 감고, 방망이를 치다가 장갑을 벗으면 붕대가 더러워지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더러운 손 때문에 (손등을 비비면서) 손등으로 먹은 적도 있다.

일부 팀은 그 손으로 서로를 먹여주는 경우도 있더라.

(웃음) 정말인가. 뭐 SK는 식사는 그렇게 하고, 저녁을 많이 먹는다. 살이 빠지면 정말 안 된다. 그래서 간식을 먹고 잘 때도 있다. 그런 생활이 계속 반복인 셈이다.

그렇게 많이 운동하고 먹는데 살이 잘 붙지 않는다고.

참 말랐다는 부분이 속상할 때가 있다. 살이 붙어야지 힘이 붙는데. 그래서 무얼 먹던 간에 음식에도 신경 쓰게 된다. 사실 고등학교 때는 지금보다 더 말랐다. 안 되겠다 싶어서 그 때부터 웨이트를 집중적으로 했고, 고 3때 효과를 많이 봤다. 단거리 많이 뛰고, 개인연습은 웨이트 밖에 안했을 정도였다. 개인연습 하면서 방망이를 많이 안 돌린 셈이다.

키가 커도 힘이 없으면 비거리가 늘지 않으니.

"키가 큰데 힘이 없으니 이건 뭐 타구에 힘이 붙어야지."라고 김성래 코치님과 김경기 코치님이 한 번씩 지적해주셨다. 다행히도 고교시절부터 웨이트에 재미를 붙이면서 그런 부분을 그래도 많이 극복하고 있다. 체형자체가 외배엽이다. 롯데의 박기혁 선배 같은 체질이다. (주 : 외배엽 체형은 신진대사율이 높고 소화를 잘 못시키는 편이며 체지방량이 적다. 대부분이 근육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대개 신진대사율이 높고 소화를 잘 못시키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저체중이 나타나고 남자의 경우는 근육을 키워 이른바 '몸짱'이 되기가 매우 어렵다고 알려졌다.)

훈련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 들어야 할 것 같은데.

지난 마무리 훈련 때는 그랬다. 오전에 나가면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 방망이를 쳤다. 기계 세 개 설치해서 (모)창민이 형이랑 넷이 한 조를 이룬다. 12시까지 3시간동안 매일 같이 계속 치는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동화형, 강민이형 계속 치고, 수비는 내 몫이었다. 일주일 지나면 스케줄이 바뀐다. 그리고 또 그 스케줄에 맞춰서 계속 치고. 사실 세 시간 치고 나면 힘이 쭉 빠진다.

SK 훈련이 힘들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아닌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서 ‘어휴 죽겠다.' 이러고 있으면 주위에서 밥 먹으라고들 하신다. 그러면 이제 밥 먹고 조금 쉬나 보다라고 생각이 드는데, 반대편에서 "베팅 1조 나와라."라는 소리가 난다. 그러면 또 뛰어가서 한 바퀴 치고, 빵이랑 우유를 먹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베팅이 끝나면 이제 주자 플레이 연습하고, 작전 관련 타격 연습하는 것들이 이어진다. 40분 단위로 다섯 개 조가 대개 그렇게 돌아간다. 대략 12시부터 4시까지 때부터 타격 연습과 더불어 바로 수비 연습을 한다. 물론 그럴 때도 있다. 짧게 치고, 멀리치는 형태로 타격연습을 한다. 이렇게 다섯 개 조가 40분씩 돌고 이제 끝났지 싶으면 반대편에서 "특타 하고 복귀한다."라고 이야기가 들린다. 한 시간동안 5시까지 또 특타를 하고 가야한다.

장갑과 붕대는 먼 훗날 보상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면 장갑이 다 찢어진다. 반창고 주위로 살이 올라오는 일도 다반사다. 솔직히 5시에 끝나는 것도 정말 빨리 끝났을 때이다. 훈련이 끝나면 다들 빨리 들어간다. 훈련을 마친 이후 너무 힘들어서 방에 누워 있다가 대충 씻고 밥 먹으면 졸음이 오는 때다. "아, 쉬어야지."하면 눈이 막 감기는데 이 때 눈을 잠시라도 감으면 곤란해진다. 잠깐 눈 붙이면 그것으로 그 날 훈련은 끝이다. 그러니까 몸이 녹초가 되던 어떻게 되던 나가고 본다. 걸어서 5분에서 10분정도 잠을 깬다.

대개 야간 특타는 7시에서 7시반에 잡히지 않나. 

걸어가면서 이제 야간 훈련을 한다. 7시 도착이면 6시 40분쯤 대개 도착을 한다. 감독님은 미리 나와 계신다. 그러면 어떻게 하겠는가. 7시에 훈련이어도 6시 40분부터 특타를 하게 된다. 2시간 동안 다섯타석에서 여섯타석 정도 치고, 특별 훈련을 한다. 그 훈련이 끝나야 잠을 잔다. 

타격 폼에서 지적을 받은 것은 무엇인가. 가령 변칙적으로 한 번씩 친다는 부분은 이야기도 있었는데 이것은 무엇인가.

(웃음) 변칙적으로 솔직히 잘 치지 않는다. 지적이라고 한다면 음. 간단하다. 가령 어깨가 빨리 열린다고 한다면 “어깨 닫고 쳐야 한다.”라는 이야기 정도. 선수들은 감독님이 어려워서 직접 못 여쭤보니까, “네” 하고 대답하고 코치님들한테 가서 어떻게 치는지 확인한다. 코치님들은 옆에 계시다가 지적하신 내용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신다. 통계 위주의 팀이라고 해서, 통계에 맞게 특타를 한다던가 부족한 코스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훈련하고 이런 부분은 아직 모르겠다.

SK 2군 타격 코칭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이들도 많다.

가령 김경기 코치님은 이렇게 치고 있으면, 폼을 뜯어 고치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좋았을 때로 돌아가도록 수시로 이야기 해주시는 편이다. 가령 "네가 좋았을 때 이랬고, 방망이가 이랬는데, 지금은 방망이가 좀 쳐졌다. 예전에 좋았을 때는 방망이를 세워서 쳤는데 이렇게 해보자." 이런 식으로. 세밀하게 조금씩 건드려 주신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박연수를 많은 영향을 끼친 선배 중 한 명으로 꼽았다.

팀에서는 아무래도 또래가 많다보니 선배님들이 기술적으로 얘기를 많이 해주신다. 박연수 선배님 계셨을 때에는, 프로에서 10년 이상 계셨으니까 나를 비롯해서 (김)재현이하고 기현이 같은 애들 모아놓고 수비도 가르쳐주셨다. 프로 선수로써 갖춰야 할 부분에 대한 좋은 말씀도 참 많이 해주신다. 물론 연수 선배님 뿐만 아니라 선배님들이 따로 불러서 지적, 조언을 조금씩 해주신다. 그 순간은 경쟁자가 아니라 모두 가족이 된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다. 쭉 보다보니 야구를 하게 된 계기가 본인 의지와 무관했던 것도 조금 눈에 들어오던데.

(머리를 긁적이며) 재상이형이 중학교 때부터 시작했다던데, 원래 동네야구 다 하지 않나. 사실 야구를 하게 된 것은 그것이 계기가 되었다. (웃음) 당시 황규연이라는 선배가 있었는데, 그 형의 아버님도 야구를 하셨다. 아버지랑 같은 직장 동료였는데 그 분의 손에 이끌려서 어떻게 보면 야구를 하게 된 것 같다.

조금 더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 같은데.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4학년, 5학년 올라갈 때가 되었는데 어느 날 그 선배가 야구하러 가자라고 그러더라.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마냥 좋다고 따라갔다. 그 때 정말 몰랐다. 그게 야구부에 들어가는 길이었던 것인지. 

지금 생각해도 조금 기가 막힌가 보다.

(웃음) 조금 웃음이 나온다. 어렸을 때에는 테스트를 형식상으로만 받았다. 그래서 “아. 그냥 형식상 테스트구나.” 싶어서 테스트를 대충 받고 나가려는데, 갑자기 “야. 명기야 너 합숙해라.”이러더라. 그런데 참 나도 순진하다. “아. 나는 이제 야구를 할 수 있으니까 그냥 얼떨결에 합숙해도 되겠구나.” 이러고 잤다. 감독님도 처음에는 잘해주셨다. “너 힘들면 안 해도 되고, 유니폼 나오면 이제 야구선수 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잘해보자.” 그냥 그 말씀이 좋아서 계속 했다. 그런데 두 달 지나니까 한참을 몰랐던지 현실을 직시하게 되더라.

(웃음) 오늘 뻥뻥 터진다. 현실직시라니.

이 때 부터는 야구인지 생존인지 구분이 안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생각 하는 부분이랑 많이 달랐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청백전을 하는데 사실 처음하면 시합을 뛰기 어렵다. 그런데 그 때 선수들 시합‘만’ 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 보여서 사고를 쳤다. 선수들 미팅 있을 때, “감독님. 저 청백전 시합 한 번만 더 하면 안 될까요.” 그 말 한마디에 정말 합숙만 하면서 야구 생활을 끝낼 뻔했다.

감독님이 많이 혼내셨나.

(웃음) 진짜로 맞아 죽을 뻔했다. 그런데 조금 아이러니하게도 되게 힘들면서도 그만둔다 이런 생각은 많이 안했다. 어리버리 하게 야구장에 끌려가서 시작하게 되었다고 야구 어떻게 하냐 이렇게 주변에서 말씀하실 때가 있었다. 그렇다고 무슨 굉장한 포부를 가지고 야구계를 바꿔보겠다 이렇게 유니폼을 입은 것은 분명히 아니긴 했지만 포기는 싫었다.

그 초등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조금 듣고 싶다. 그래도 야구 선수 이명기를 배출해 낸 곳 아닌가.

어렸을 때 주변에서 친구들이 그랬다. 너희들은 번트 야구라고. 번트를 진짜 많이 했다. 번트도 따로 연습, 시간 내서 2시간씩 따로 하고 그랬다. 번트, 캐치볼 같은 기본기를 당시 감독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중에서 초등학교 때 가장 많이 번트 연습을 했다.

투수로서도 괜찮다고 평가를 받았다.

사실 이 부분은 (김)영롱(엘지)이한테 물으면 가장 빠르다. 영롱이와 같은 중학교를 나왔는데,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잘 던졌던 편에 속했다. 그런데 중학교 진학 이후에 고등학교 감독님이시기도 했던 양후승 감독님이 키가 되게 작아서였는지 갑자기 투수를 안 시키시더라.

지금은 키가 큰데, 당시에는 많이 작았던 모양이다.

영롱이가 중학교 2학년 때 187인가 그랬다. 당시 나는 150몇인가 그랬다. 키는 고등학교 때 갑자기 컸는데, 감독님이 처음 부임하신 이후에 “너, 외야 나가라.” 이러시더라. 방법있나 외야 나가야지.

키가 정말 갑자기 컸다. 지금은 팀 내에서도 작은 편이 아닌데.

중학교 1, 2학년 때 1루수하면서 투수를 했는데 방금 그 일로 외야도 보게 되었다. 그 때 참 서럽기도 했지만 투수는 자연스럽게 안하게 되었다. 1루는 (박)윤이가 보고, 투수는 영롱이가 하고 나는 외야를 나간 것이다.  

지금도 투수에 대한 미련이 있나.

그런데 투수했다면 잘 못했을 것 같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초등학교 때도 그렇게 잘하거나 잘할 수 있는 투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선수가 없어서 했지 않나라고 아예 생각하니까 지금은 후회 없다.


앞서 동기들 이야기를 하다가 놓쳤는데, ‘야수 이명기’로 만든 양후승 감독 시절 인천고 분위기가 참 좋았다던데.

선수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으면, 대개 '이야기를 많이 들어줄 수 있는 것'이라고 답하지 싶다. 감독님은 누구보다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신다. 그 부분이 참 힘이 되었다. 훈련도 조금 달랐다. 중학교 때만 해도 러닝이 너무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 어린 애들이 체력이 얼마나 되겠나. 15바퀴를 베스트로 뛰게 했었는데 구토가 나오더라. 어리고 힘이 안 받쳐주니까 의욕도 떨어졌다. 그런데 이런 부분들을 중학교 어느 순간부터 뵙게 된 양후승 감독님과 함께 하면서 극복이 되었다.

가령 예를 든다면.

예전에는 감독님한테 혼나고, 선배님 괴롭힘 당했던 것이 일과였다. 중학교 1학년 때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양후승 감독님은 뭐랄까. 체력 위주보다 기술 위주로 운동하고 이것을 하면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주셨다. 겨울에만 체력 운동을 하게끔 주문하셨고 구타를 없애주셨다. 그래서 감독님 계실 때가 훈련하기는 참 좋았다. 그 부분이 도움이 되어 고교시절 대통령배 때 도루상을 받았다고 생각한. 야구를 생각하며 하다보니 타선에서는 1번 혹은 3번으로 배치가 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1번처럼 쳐야겠다.” 이런 의식보다도 상황에 맞는 스윙을 하려고 했다. 이게 얼마나 큰 부분인지 사실 운동하지 않는 이들은 잘 모른다. '맞아서 야구하면 사람 된다.'라는 이야기는 솔직히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술 위주라. 조금은 궁금한데.

이전 감독님이셨을 때에는 체력 훈련이 주를 이루었다. 심지어 이 훈련이 너무 힘들어서 소위 무릎이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매일 러닝, 체조, 파워체조가 이어진다. 거의 곡예 수준이다. 그 다음에는 갑자기 공포의 외인구단이 된다. 타이어를 끌고, 밥 먹고 또 러닝 뛴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다. 스윙을 천 번 이상을 해야 한다. 말 그대로 운동을 양적으로 채우기 위해서 했다. 능률이 안 오르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걸 우리는 왜 할까.'라는 생각을 친구들과 참 많이 했다.

질적인 효율은 양적인 부분을 상쇄시킨다고 하지 않던가.

바로 그 부분이다. 그런데 시간을 적게 할애해도 딱 필요한 것만 있지 않나. 기본기 위주도 집중력 있게. 가령 캐치볼 20분, 러닝 20분, 단거리 몇 분. 기왕 하는 것 산뜻하게 하게끔 유도하는 훈련들. 이런 식으로 운동을 한 이후 타이어를 동네 자동차에서만 봤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2009년 가장 기대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말할 때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아서 걱정했다. 이번 목표는 열심히 해서 1군에 계속 있는 것 그 하나가 목표다. 구체적인 타격 목표는 있지만 기록적인 목표는 나중 문제다. 말이 앞서는 선수라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다. 정말 이제는 많은 분들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

<사진-inning.co.kr, SK 와이번스>

[고남욱, 쿼터메인 namook8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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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쿼터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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