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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터메인's mentalgame

[빛과 그림자] 이상훈. "수혁이형은 제게 그냥 동네 형이에요."

위클리 이닝 2009. 12. 6. 14:15

“아시다시피 공연을 해달라는데, 이상훈 밴드가 아니고, 저는 What이라는 밴드에요. 전혀 상관이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런 행사는 해야죠.” 때는 1985년 서울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학년이던 이상훈은 봉황대기 성광고와의 2회전에서 2안타 완봉 팀 승리를 이끌었다. 팀을 승리로 이끌 당시 포수는 임수혁이었다. “형이에요. 선배이기도 한데." 그가 웃어보였다. "내가 수혁이 형이 누워있다고 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고, 수혁이 형을 아는 사람과 수혁이 형을 아는 사람. 수혁이 형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어요.” 2008년 12월 9일 고려대학교 근처에 위치한 '마시고'에서 스포츠 잡지Sports KU가 주최한 'Love Sports Harmony'에 이제는 야구선수가 아닌 이상훈을 만날 수 있었다.

본인에게 각별한 행사이지 않겠는가.

(담배 한 모금을 다시 물면서) 우선 이 행사는 내가 메인이 되면 섭섭하죠. 수혁이 형이 메인이 되어야 하는데. 이 행사를 주최한 학생들이 대견스럽기도 하고. 처음 취지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Sports KU 편집장인 김원 학생이 전화했을 때, 기획안인가를 보고 물었죠. 이거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니냐.

그래도 어렵지 않게 결정하지 않았나.

수락이라기보다는 당연히 하는 것이고 뜻 깊게 만들어진 자리니까. 당연히 행사야 마음이 가니까 할 수 있는 것이고. 중요한 부분은 다른 곳에서도 수혁이형을 맞이하는 행사를 했지만, 고대 자체 내에서 하는 행사는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사실 이번 이 행사는 고대 자체 내에서 처음으로 신경 쓴 부분이에요. 그러답니 조금 더 의미가 있고 고대 출신 선배님들이 잘 참석해주셨죠.

임수혁 선수를 사랑하는 이들이 아직도 많다.

 거기에 저 역시 속할 뿐인데 이렇게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분들이 계시니 감사하죠. 그래서 이런 행사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아무 이유가 없는 거야. 이건 이유를 대면 안 되는 것이고. 이의가 없는 것이고. 단지 멀리 있고 시간이 안 돼서 참석 못한 분들은 마음속으로 헤아려주면 되는 것이고.

참고로 행사에서 임수혁 선수 동영상 때 마운드에 고인이 된 박동희의 얼굴도 보였다.

(묘한 웃음을 지으며) 수혁이형이 1학년 때였나 보네요. 그러게. 정말 그러네.

임수혁 선수 악플 사건도 있었다. 이상훈이라는 이름으로 한 마디를 바라는 주변도 많았다.

악플러들에게 하지마세요 이런 얘기는 말하고 싶지도 않고, 그건 그 사람들의 표현이라는 생각도 간혹 들어요. 알고 보니 어린 친구들이었는데 수혁이형 아버님이 세상 바닥에 하얀 눈 덮이듯이 덮고 지나가셨다고 해야하나. 그냥 속상하고 별로 얘기하기 싫어요. 수혁이형한테 도움이 되어주는 사람이 많고,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많아요. 이 얘기를 정말 안했네. 수혁이 형이 정말 인간적이지.

이상훈에게 임수혁이란.

 어느 매체에서도 물었을 때 "수혁이형. 일어나 어쩌구저쩌구." 근데 어이 그거 물어보지 맙시다 이랬어요. 세상 누구한테 물어봐도 빨리 일어났으면 좋겠다, 가족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라고 하겠죠. 그런데 그런 말하면 나는 정말 그것밖에 표현을 못한다고 해야하나. 이런 행사나 다른 것들이 많이 생겨서 간병인도 계속 이뤄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수혁이형이 지금 상황에서 연명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편했으면 좋겠어요. 주위 사람들이 도와줘서 주변 가족들도 덜 힘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주변에 수혁이형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감히 내가 혹은 우리가 헤아릴 수 없고, 정말 감히 얘기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쉽죠. 

앞으로 행사가 부담이 되지는 않겠는가. 조금 우문이다.

 전혀 부담되지 않아요. 이런 이목이 내게 집중이 되어서 사실 그게 미안한 거에요. (담배를 다시 하나 꺼내더니) 내가 옛날에 야구했던 야구선수로써 이렇게 끝나고 누구한테 "인터뷰 하시죠." 그러는 것도 내키지 않았어요. 야구판 떠난 지 5년이나 되었고, 개인 사업하고 그러는데 내가 주목받는 것은 참 그렇죠. 취지가 수혁이형을 위한 순수한 것이니까 기자분도 안 오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한 번 나옴으로 인해서 행사가 많이 알려지고 오신다고 생각이 드니까.

팬들이 임수혁 선수를 어떻게 기억 해주었으면.

수혁이형은 최소한 내게는 동네 형이에요. 솔직히 이상훈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너무 서글서글한 수혁이형을 싫어하는 사람이 정말 있을까 싶어요. 형이 뛰던 당시에는 FA라는 것이 없었는데 그냥 그 부분이 지금도 아쉬워요. FA 혜택이라도 받았다면 참...아마 그 때쯤 해서 생겼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누가 그러더라. 이상훈 앞에서는 야구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라고. 

그렇지는 않아요. (웃으면서) 그건 겉으로 보는 이미지뿐이지 지금 얘기 다 하고 있잖아요. 기자회견 같은 경우는 질문이 남발하잖아요. 질문을 받은 거에 대해서 명확한 대답이 안 나오면 다른 사람이 비슷한 질문을 해요. 이렇게 그냥 길가에 앉아서 인터뷰하는 것은 솔직히 처음이에요. 그냥 내 모습이 이런 게 다에요. (이 날 셔터가 내려진 가게 앞 바닥에 앉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끝으로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다.

그저 나라는 사람은 수혁이 형 행사를 위해서 알려지고, 이뤄지게 해주는 역할이길 바랍니다. 수혁이 형이 지금은 그라운드에 없지만 항상 사랑받았으면 좋겠어요. 양승호 감독님, 고려대학교 야구부 졸업생 모임인 백구회 선배님들께는 오늘 우울하다고 여기서 좀 이야기 좀 하고 가겠습니다 그랬습니다. 이제 인터뷰 끝났으니 지금 가야할 것 같아요. 오늘은 수혁이형에 대해서 만난 거니까 이렇게 하고, 나중에 순대국이나 한 그릇 자십시다.

1992년 가을, 두산과의 1차 지명 우선권을 놓고 주사위를 던진 LG가 환호성을 지르던 시점으로 돌아간다. 고려대학교는 1992년 봄철대학연맹전 성균관대와의 경기에서 14타자 연속 탈삼진을 기록하던 이상훈에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쏘아댔다. 당시에도 임수혁보다는 이상훈은 그렇게 부각되었다. 이상훈과 임수혁. 중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 대학 시절(88학번 경영학과 임수혁, 89학번 경영학과 이상훈)까지 그들은 함께였다. 2000년 4월 18일 롯데 자이언츠 소식이던 임수혁이 LG 트윈스와의 경기. 1루에서 2루로 뛰던 도중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뇌사에 이르기까지 유니폼은 달랐지만 야구인으로 느끼던 뜨거운 피는 같았다. 이상훈이 미국에서 선수 생활을 하던 당시 벌어진 일이었다. 인터뷰 내내 이 행사에서 앞으로도 그가 주연보다는 조연이길 바라며 그는 일어났다. 최소한 이 날 행사는 끝날 때까지 투수 이상훈은 임수혁의 포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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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이상훈, inning.co.kr, 동영상- Sports KU>

[고남욱, 쿼터메인 namook8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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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쿼터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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