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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터메인's mentalgame

당신은 당신의 글러브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이야기거리를 갖고 있습니까?

카테고리 없음 2009. 5. 11. 12:12

이 글은 제가 취미로 야구글러브 수집을 하던 시절, 제 개인영역에 임의로 써 두었던 것입니다. 단순히 제 사견을 피력한 것에 불과하니 그냥 재미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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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야구로 미국 유학을 떠날 생각을 한 이유는 다름아닌 '다양한 야구'를 몸소 느끼고 싶어서였습니다. 엘리트 스포츠로 대변되는 우리의 야구는 모든 야구인들을 엘리트 선수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로 양분해 버렸고, 야구라는 것이 상당부분 엘리트 스포츠의 아류에 지나지 않음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문인지 엘리트 스포츠의 폐혜에 대해서조차 우리 야구계는 무비판적으로, 그것이 진정한 야구의 모습인 양 수용하기에 이르렀던 것이죠.

필자가 야구 유학길에 오르게 된 것에는 빠따나 손찌검 내지는 쓸데없는 군기 따위를(엘리트 스포츠가 전해 준 잘못 된 모습에 불과한데도) 진정한 야구의 필수적 일부라고 생각하며 강요하던 당시의 야구 풍토에 대한 반항도 어느 정도 작용했습니다.

다행히도 필자의 기대대로, 미국에서 목격한 야구는 한국에서 보던 그것과는 많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일단 생활체육화된 야구에서 자기목적적인 야구인들이 많았기에 보다 다양한 형태의 야구관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아 좋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자면 365박 366일 걸려도 모자랄 테니 생략.)

글러브의 세계만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글러브의 형태 만들기, 모양 잡기, 길들이기 등에 있어서 우리에게는 '자기 것'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새 글러브를 사고 설레임에 조물딱 조물딱 만져보다가 친구 불러 캐치볼도 하고 이렇게 저렇게 애정을 가지고 키워나가는 글러브란 것은 존재하지 않고, 그저 소위 글러브 전문가라고 불리우는 친구들의 (필자도 어쭙지 않게 몇몇 타인들에게 그런 역할을 해왔는지도 모르겠네요...) 공식과 같은 direction에 맞추어 글러브의 모양을 잡고 각을 만듭니다. 한 칸, 두 칸, 엄지는 어떻게 쓰고 중지는, 약지는, 새끼는... 심은 어떻게 꺾고 무엇은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겉으로는 글러브는 '길들이는 맛'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자기 손에 맞게, 자기의 스타일에 맞게 자연스럽게 길들이기는 커녕 공식화된 길들이기 process를 그대로 따라가는 모습들을 보면... (그러면서도 왜들 그리 단단한 글러브만 찾는건지....) 안타깝기 그지 없을 때가 많습니다. 저 또한 그 중 하나여서 더더욱 안타깝습니다.

무릇 글러브란 야구를 위해 사용하는 도구이고, 그 야구라는 것은 어떤 두 개인도 동일한 방법으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새로 나온 글러브들조차 서로 다른 생명체로부터 나온, 바느질 한 땀 한 땀이 서로 다 다른 것임을 부인할 수도 없죠. 당장 필자가 일을 했던 립켄 야구학교의 칼 립켄 형제만 해도, 둘은 서로 같은 포지션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실사용 글러브는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의 글러브를 보는 것 같을 정도였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글러브 안에는 그 사람의 단순한 야구기능 외에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들어가 있다는 점입니다. 내야수 글러브인데 세 칸에 맞추었던, 배꼽이 나왔건, 오일을 많이 칠해 무겁건 어쨌건간에 글러브에는 각 개인마다 자신의 애착물에 대한 interaction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고 또 그래야 합니다.

반이 접혀서 공을 튀겨내는 글러브가 그 사람의 야구에 대한 열정을 나타내 줄 수는 없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반이 접혀도 자신의 야구 수준에서는 전혀 플레이에 문제가 없을 수도 있고요. 립켄 야구학교 시절, 한 학생의 롤링스 PRO2MTC 글러브를 손을 봐 준 일이 있는데 (끈들을 다시 정리해서 묶어준 정도) 비록 글러브는 매우 형편없이 길이 들여져 있었지만, 그 아이는 자신의 아버지가 쓰다가 물려준 것이라고 하며 그 글러브를 매우 자랑스러워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글러브로 아버지와 캐치볼을 한 기억이 살아있는 글러브라면, 아버지의 야구 열정을 내려받은 글러브라면 분명 그 글러브는 반으로 접혀있던 끈이 마구 풀려져 있건간에 굉장한 의미를 가진 글러브, 높은 가치를 가진 글러브임에 틀림 없습니다.

미국야구를 모르는 사람들은 미국인들이 글러브를 험하게 쓴다고 하지만, 적어도 필자의 경험상으로는 그 반대입니다. 미국인들은 그 험한 글러브 하나하나에도 자신의 열정과 자부심을 불어 넣습니다. 험하게 해져도 쓰고 또 쓰고... 걸레처럼 되면 자기 손처럼 되었다고 좋아하는 이들입니다. 그렇게 오랜시간 글러브와 interaction을 한 만큼 글러브에 얽힌 추억도 많을 것이고요....

오히려 글러브를 엉터리로 쓰는 사람들은 우리 한국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의 스토리가 담긴 글러브란 없고 모조리 타인의 스토리를 따라가는 글러브들이 넘쳐나니까요. 엄청나게 단단한 글러브란 것을 구입해서는 또 최단시간 내에 '정석'에 맞는 방식으로 길을 들여 사용하려는 것 부터가 굉장한 모순일 뿐더러, 글러브 하나하나에 쏟는 애정과 관심 등은 반으로 접힌 미국 고교야구 3류 선수의 롤링스 GGP 글러브보다도 훨씬 떨어진다 할 수 있습니다. 프로선수와 똑같은 모양으로 길을 들였다고, 혹은 소위 글러브 도사라는 분들이 길들여 주었다고 하며 자신의 글러브를 내미는 사람 치고 제대로 된 야구인은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입니다. (오만과 편견일 수 있음을 인정함.)

또, 상대방의 글러브를 힐끗 보고 그 사람의 야구에 대한 애정과 열정, 그리고 그 애정/열정의 역사를 한 순간에 '배꼽 나왔네.', '좋은 글러브 망쳤다.', '글러브는 그렇게 쓰는 것이 아니야.'라고 매도해 버리는 사람들 역시 기본적으로 야구인이 될 자질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따위 발언은 한 사람의 야구인생 전체에다 대고 정면으로 침을 뱉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다행히 저같은 경우는 글러브에 대해 필요 이상의 칭찬을 받는 입장이었습니다만... 실은 그것도 그리 마음에 썩 내키지는 않습니다.)

프로 선수의 야구인생만이 값지고 고귀하며 아마 선수의 야구 열정은 고작 아마츄어에 불과한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프로 선수가 직접, 내지는 프로 선수식으로 길들인 글러브가 전혀 그렇지 않은 글러브보다 더 우월한 것도 아닙니다. 두 글러브는 서로 다른 야구 인생(우열을 가릴 수 없는)을 상징하는 물건일 뿐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나도 많은 예외가 존재하죠.) 우리는 야구인으로서 그러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그 어떤 물건에도 존경과 경의를 표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상으로 필자의 오만과 편견에 가득찬 글러브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쿼터메인과 함께하는 광고

Posted by 쿼터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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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창엽 2010.06.19 20:02

    상당히 의미 있고,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글 잘읽었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