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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터메인's mentalgame

강팀 롯데가 되기를(11)

강팀 롯데가 되기를 2008. 2. 27. 10:43
부제 : 야구. 아직 끝나지 않았다.(4)

“딱!”소리와 함께 건대 호수 같다고 느끼던 그 넓은 학교 운동장을 거의 넘길 뻔했다. “와. 장난 아니다. 아니 저렇게 마른 녀석이 어떻게 저렇게 치냐.” 이쯤 되면 아이들 탄성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유열이가 고개를 가로 저으면서 마운드에 에이스가 실투는 아니었지만 상대타자가 제대로 쳤다는 제스츄어를 보냈다.-내 기억이 맞다면 우습게도 녀석은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그리고 그 타구를 날린 녀석은 1루에 서 있는 친구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유유히 루상을 돌고 있었다.

사실 이때를 기억해보면 정말 코메디일 수도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정말 그들만의 리그가 있었고, 사뭇 진지했다. 그리고 이 당시에도 워낙 진지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지금 기억나는 이 장면에서 학교 운동장을 넘길 뻔한 타구를 날린 녀석은 3루에 안착했다. 공이 중계되고 있었지만, 홈까지는 들어오지 않았다. 뒤늦게 물어보니 그게 예의라고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 녀석이 유석이었다. 유열이와 유석이는 정말 맞수였다. 그리고 항상 그 결과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둘이 타석과 마운드에 있을 때에는 나름대로 긴장감이 돌았다. 그 때부터 손에 땀을 쥔다는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조금은 느꼈던 것 같다.

당시 유열이는 정말 모든 투구 폼으로 던지는 듯 했다. 그 날만 하더라도 바이얼린 학원을 끝내고 대타로 들어서지 않았다면 공에 손대는 아이들이 없을 뻔했다. 1회부터 3회까지는 본인 이야기로는 선동렬 폼으로 4회부터 6회까지는 문희수 폼으로 그리고 그 이후로는 이강철 폼으로 던지고 있었단다. 사실 난 이 폼들이 정확히 어떤 폼인지 잘 모른다. 그냥 그렇다고 하니까 그렇다는 것으로만 알았다.(우습게도 난 마운드에 오를 때, 우완 최창호의 폼으로 던지려고 했었다. 그래서 키킹 동작이 좀 길었다.)



올스타전처럼 3이닝 투구도 아니고, 하여간 재미있는 녀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디서 본 건 있는지 공수교대가 되면 작전지시를 하고, 수건을 머리에 뒤짚어 쓰고 열을 식혔다. 어깨를 한 두 번 돌려주면서 최동원도 임마 아이싱 같은 것 제대로 안했대라는 이야기도 덧붙이곤 했었다. 문제는 나도 이런 유열이한테 굉장히 야구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승부욕도 같이. 근데 그런 녀석의 공을 바이얼린과 함께 나타난 녀석이 나와서 홈런성 타구를 쳐낸 것이었다. 게다가 당시 그 유석이의 옷차림은 프랑스 공작, 백작들이 입고 다니는 흰색 긴 양말에 음악가 스타일의 옷이었다. 타석은 좌타석.

“난 최동창이 참 좋아. 이유는 없어. 그냥 이름이 동창이라서 그래.” 유석이는 참 특이한 버릇이 있었다. 안타를 치기 위한 스윙을 할 때면 항상 선수들 이름을 불렀다. 가령 타석에 공을 맞출 때 “김광수” 혹은 “김광림” 모 이런식으로 말이다.(웃음) 유석이는 OB베어스 팬이었다. 유석이와 나는 항상 내기 아닌 내기를 했다. “내가 유열이 때문에 그런 것은 꼭 아니고(웃음) 해태가 정말 싫다. 내가 최고에 위치에 너무 오래 있고 상대 팀 악착같이 몰아붙이는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 지금 OB가 그렇게 당하자나.(웃음) 넌 어떠냐?” 유석이는 초등학교 시절 나와 가장 친한 친구였다. 가족들이 모두 대구분들이라 삼성을 응원하지만 그냥 본인은 OB가 좋다던 녀석. 그 녀석이 내 친구 유석이었다.



장호연과 이강철의 투구 폼

아이들과 매일 혹은 매주 주말마다 거의 야구를 했었다. 그리고 유열이는 해태에서 던지는 모든 투수들의 폼을 흉내 내었다. 심지어 초와 말을 따지는 선공의 가위 바위보를 할 때도 좋아하던 투수인 이강철의 폼으로 가위나 보자기를 내던 친구가 그 녀석이었다. 이 쯤 되면 정말 야구를 병적(?)으로 좋아한다고 하던 어른들의 말씀이 떠오를 법 했다.

그러나 이상하다는 것은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했을 때 해당되는 이야기인가보다. 그런 모습을 어처구니 없게 바라보면서 어설픈 투구 폼으로 가위를 내던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 그 리고 그런 투구 폼으로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방금 흉내 낸 폼이 장호연의 폼이라며 웃음을 지어보인 친구가 있었다. 아이들과 한바탕 웃었다. 유석이었다. 해태를 응원하던 친구들이 어린이날 선물 받은 장난감이 한국시리즈 우승 샴페인을 거머쥔 모습과 비슷하게 느껴졌고 OB가 롯데에게 장호연의 노히트 노런으로 다가왔었지만 정말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이 그 때였던 것 같다.

가끔씩 그 친구들과 메신저라던가 메일, 혹은 전화로 소식을 주고받곤 한다. 아주 어린 시절이었지만 기록실이라고 딱히 팬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자료가 없다보니 신문을 어린 나이에 오려서 그걸 모으고 모아 스크랩했었고, 8개 구단 라인업이나 신인들, 그리고 2군에 있는 선수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 역시 우리들이 하는 일 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끝으로 동네에서 베트를 휘두르며 글러브를 매만져주던 일이 있었다. 끝으로 기재하게 되는 그 일은 우리가 야구에 대한 열정의 깊이를 측정할 수 있는 마지막 시험 시간이기도 했었다.

<사진-장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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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쿼터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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