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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터메인's mentalgame

강팀 롯데가 되기를(10)

강팀 롯데가 되기를 2008. 2. 27. 10:43
부제 : 야구. 아직 끝나지 않았다.(3)

지금도 존재하지만 근 10년 전만 하더라도 인터넷 상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사이트 중에서 하나는 다름 아닌 아이러브스쿨이라는 동창모임 사이트였다. 중고등학교 친구들이야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서 그런지 크게 궁금하지 않았지만, 학교를 다니다 막판에 전학 간 내게 이전학교 친구들은 너무나 궁금했었다. 그리고 그 동창 모임은 군 입대를 앞둔 시점과 제대를 한 시점에서 모두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코드는 다름 아닌 야구였다.

가끔씩 술 한 잔 기울이는 야구를 좋아하는 지인들이 여느 야구팬들처럼 내 주변에도 역시 존재한다. 그리고 그 이전에도 학창시절 내 주변에는 야구광들이 적잖이 존재했다. 물론 지금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초등학교 시절. 아니 내게는 국민학교 시절 그 야구광들은 대부분 학년을 거듭할 수록. 소위 세월이 흐를수록 서울 팀을 응원하는 친구들 위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야구를 좋아하는 친구들을 찾아보기 힘든 와중에 정말 몇몇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초등학교 때 유열이와 유석이는 더 기억에 남는 친구들이고, 중학교 시절 같은 반이던 친구들. 그리고 고교 때 소위 말하는 별명 코비라는 녀석은 내게 더 각별했었다.(코비는 왼손은 거들 뿐.(4)에서 이미 소개)



내 친구 유열이와 유석이.

아이러브 스쿨이라는 사이트는 친구들이 첫사랑을 찾기 위해서 많이 찾았던 사이트로 회자될 수도 있겠다. 이 사이트는 그 대상이 남성이던 여성이던 친구를 찾고 소식을 궁금하다면 당신도 바로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그런 사이트였다. 물론 그 친구들만 찾기에는 이 공간은 좀 의미가 부족한 의미의 사이트일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동창들 중 야구를 정말 좋아했던 친구들을 찾기 위해서 강팀(9)편에 소개된 유석이를 가장 먼저 찾으려 했었다. 내게 야구를 가르쳐 준 친구들 중 한명이었던 유석이. 아마 그래서인지 당시만 하더라도 같이 야구를 어린 시절 했던 친구들이 기억나 무심코 아이러브스쿨에 남겨진 쪽지 전화번호로 내 나름대로 다이얼을 돌렸던 것 같다.

물론 그 전화번호의 주인공(?)은 유석이뿐만이 아니었다. 기억에 남는 친구로 유열이라는 녀석도 있었는데 이 친구도 굉장히 독특한 캐릭터의 소유자였다. 아마 이 녀석이 대학을 들어가고 나서 내가 처음으로 연락을 했던 것 같으니까 거의 10년이 다되어서야 봤던 것 같다. 암튼 유열이라는 친구와 유석이라는 친구는 내가 야구를 보는데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친구들이었다. 물론 많은 친구들이 더 있겠지만 우선 생각나는 친구들 중에 한명이 이 두 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친구들의 이야기를 빼놓지 않으면 내가 살아온 과정이랄까 야구를 보게 된 배경을 설명하기란 좀처럼 쉽지가 않다.

유열이라는 친구가 응원하는 팀은 다름 아닌 해태 타이거즈였다. 지금이야 기롯동맹이다 롯기동맹이다라고 이야기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롯데는 정말 선동렬을 비롯한 해태 투수들의 밥이었다. 당시 한 반이던 부모님께서 부산, 경남출신의 자녀라는 명찰이 가슴 한켠에 새겨진 친구들이 대놓고 롯데를 응원하지 못하는 시점도 바로 이때로 기억한다. 쌍방울 레이더스와 롯데 자이언츠. 어떻게 보면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서자 홍길동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간접체험 할 수 있던 시기가 그때라면 오버일까. 당시 그런 친구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인지 어린 마음에 롯데 전문가가 되자라는 꿈이 내 가슴 한켠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우습지만, 그 때부터 나도 모르게 응어리가 졌던 것 같다. 서울 토박이라는 녀석이 부산, 경남사람들을 이해하려고 하는 과정이 그렇게 힘든 줄은 어린 마음에는 정말 잘 몰랐던 그 시절. 바로 내 어린 시절이었다.



해태를 좋아했던 소년.

야구장에 간 것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였다. 내게는 야구 광팬인 아버지와 외삼촌이 계신 것이 어찌 보면 야구라는 스포츠를 더 가깝게 느끼게 된 또 하나의 이유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야구를 직접 해본 것은 유열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전학을 오게 되면서부터였다. 아버지가 약사라고 소개한 부천에서 전학을 오게 된 이 친구는 그렇게 만났다. 유열이는 내게 야구는 정말 어떻게 하는 것인가라는 부분에 대해서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으로 다가온 녀석이었다. 이렇게 이야기하자면 사실 거창하지만 당시 초등학교 3학년때이긴 했지만 정말 야구에 대해서 진지함을 알게 해준 친구였다.

이 친구는 우선 특징이 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마운드에 선다. 가장 큰 특징이었다. 타석에서는 항상 고집하는 타순이 있다. 4번이었다. 투수에 4번. 에이스가 항상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였다. 심지어 부천에서 전학 온 녀석이었지만 야구를 전도하기 위해 정말 발에 불이 나도록 다녔었다. 야구 글러브에 18이라고 숫자를 적어놓았고, 헬멧까지 샀었다. 체육사라고 하는 곳에서 선수들이 직접 쓰는거라며 부모님께서 사주신 베트로 연습을 했었다. 그 베트로 수업이 끝나고 혼자서 특훈 한다고 나무를 때리곤 했었다. TV에서 장훈 선수가 연습한 장면이었다고 한다. 이래서 어린 아이들에게 TV매체는 정말 무섭다.(웃음)

야구를 하기 싫어했던 내게 무작정 근성을 강조했었던 신기한 녀석이었다. 10살짜리 꼬마아이(?)라고는 도저히 생각이 안 들었던 것 같다. “우리 아빠가 그러시는데, 해태의 힘은 선동렬만이 아니라는데 넌 어떻게 생각하냐?” 유열이라는 친구가 신기했던 것이 이 녀석은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갈 때 모래주머니를 종아리에 차고 집에 갔었고, 야구 명문인 학교를 가서 야구 선수가 되겠다는 녀석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녀석은 서울에 있는 공대를 들어갔고, 지금은 야구보다 농구를 더 좋아한다는 점(웃음)이다. “너 요새도 야구 보냐? 난 보기는 하는데 우리 아버지 말씀으로는 야구가 예전 같진 않으시대. 근데 세월이 흐르는데 야구라고 변하지 않겠냐. 너도 알겠지만 난 제일 그리운 선수가 문희수, 김정수, 이강철이야. 선동열은 자주 보자나. 요즘 애들이 조충렬하고 대타 이경복을 기억할까. 난 그 사라진 선수들이 기억나더라.” 이 친구와 웃으면서 강남역에서 언젠가 나누었던 이야기가 귓전을 스쳐지나간다.

<사진-장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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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쿼터메인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너무 오랜만에 들리네요...
    회사 생활이 바쁘다보니..^^
    요즘 롯데야구가 참 재미있어서 관심있게 지켜보는 중입니다^^
    가르시아 멋지더군요

    • 안녕하세요^^ 요새 이것저것 바쁜척을 저도 하는 중이라 정신이 없네요. 블로그도 사실 방치상태에요. 잘 지내시죠? 이렇게 텅빈 블로그에 글 달아주셔서 너무 감사하네요.^^ 시간나는대로 언젠가가 될지 모르겠지만 포스팅도 자주 할 날이 있겠죠?ㅎㅎ

  2. 젠틀맨 2008.07.15 21:10

    님의 글 반갑게 잘 보았습니다. 오랜만에 이경복 선수의 이름을 접하게 되어 너무너무 반가웠습니다. 혹시 이경복 선수의 연락처를 아시면 제 메일로 부탁드립니다. 이메일 주소:lme0904@hanmail.net 혹시 이글을 보신 분들 중에 이경복 선수의 근황을 아시는 분이 있으면 연락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