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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터메인's mentalgame

김병현. PNC 파크가 기회의 땅이 되기를.(2)

빛과 그림자. 2008. 2. 25. 09:26
 그러나 김병현이 애리조나에서만 선수생활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마무리로 남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2002년 시즌이 끝나고 선발로의 전환을 팀에 요청하기에 이른다. “난 선발 투수를 하기 위해서 메이저리그에 왔다.”라는 내용의 기사가 스포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렸고 구단과의 마찰은 이때 정점에 올라서게 된다. 애리조나 감독이었던 밥 브랜리와 사이가 틀어졌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연봉조정신청 자격까지 갖췄기에 애리조나에서 트레이드 할 것이라는 예상은 조금씩 감지되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결과가 말해주듯 아쉬운 부분은 2003년 시즌을 결국 선발로 출발했으나 저조한 성적을 내게 된다. 당혹스럽게도 게임 도중 당시 콜로라도의 외야수 프레스톤 윌슨이 타격을 하다 던져버린 베트에 발목을 맞아 부상을 당하는 일도 벌어진다. 애리조나 입장에서는 김병현을 어떻게든 보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생기게 되었고 결국 그를 트레이드 시장에서 카드로 쓰기 위한 패로 타 팀에 보여주기에 이른다. 그리고 결국 보스턴의 셰이 힐렌 브렌드와 사실상의 1대 1 트레이드가 성사되어 버린다.





  2003년 시즌 중 보스턴으로 팀을 옮겨서 말 그대로 팀에서 원하는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이야기를 인터뷰에서 밝힌다. 선발과 셋업, 마무리를 오갔던 것은 당연했고, 2004 시즌에 앞서 보스턴과 FA에 나가기에 앞서 거액에 계약 체결을 한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문제가 되었는지 팀은 그 해 우승을 하지만 김병현은 시즌 중에 트레이드 블록에 자주 오르락 내리게 된다. 심지어 일본행까지 점쳐지기도 했었고, 한 번 찍힌 성격적인 트러블이라고 보도된 내용들은 그를 더 힘들게 했다. 김병현에게는 다시 한 번 결정의 시간이 와야만 했고, 그래야만 무슨 탈출구가 보일 것 같았다. 밤비노의 저주는 풀었지만, 그 자신은 보스턴의 팬들과 언론을 풀어내기가 어려웠던 모양을 보였다. 2003년 가을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에서 '손가락 모독 사건'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부분은 두고두고 회자되었던 것도 하나의 부담이었다.  





그리고 2005년 5월 31일. 일제히 국내 언론은 김병현의 콜로라도행 기사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투수에게는 극악이라는 평가 속에 유니폼을 입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팬들이 걱정의 시선으로 바라봤던 것이 사실이었다. 보스턴이 콜로라도로부터 받은 선수는 수비형 포수로 이름을 날렸던 찰스 존슨과 왼손 투수 크리스 나버슨. 보스턴과 콜로라도가 1대2 트레이드에 합의했던 것이다. 보스턴은 당시 트레이드에 있어서 김병현의 시즌 연봉인 600만 달러 대부분을 떠안기로 했을 정도로 그를 보내고자 하는 모션을 강하게 보여주었다. 2004년 김병현은 보스턴과 2년 1000만달러의 계약을 했던 김병현은 자존심이 상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게다가 보스턴 테오 엡스타인 단장이 "김병현의 연봉 600만달러 대부분을 지급할 것이며 이는 전적으로 나의 실수였다."며 김병현과의 2년 계약을 후회한다고 밝혔던 것은 스포츠 신문의 한 켠을 장식하기까지 했다. 물론 당시 트레이드에는 보스턴은 물론, 김병현의 의중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엡스타인 단장은 "김병현 자신이 트레이드를 간절히 원했다.(He was crying for a change of scenery.)"고 인터뷰했던 구절도 굵은 글씨로 지면을 채워주었다. 그렇게 김병현과 보스턴의 인연은 끝이 났다.



김병현의 경우에는 광주일고 시절 가장 장점으로 꼽혔던 점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게임을 자신이 지배하고자 하는 마인드를 지녔다는 점이었다. 워낙 말이 없는 편이었고, 그렇다고 잘 다가가는 성격이 아니었다고 당시 그를 지도했던 국내 지도자들은 입을 모은다. 그러나 만화책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김병현은 타석에 들어섰을 때, 어느 누구보다 그 상황을 즐겼다고 한다. 그렇게 타석에 들어서는 순간 자신이 광주일고 시절 서재응, 최희섭, 이현곤을 비롯한 광주일고 최강 멤버들의 기억이 고스란히 떠오르곤 한다고 한다.




애리조나 시절 팬들을 사로잡던 업슛은 보스턴을 거치면서 많이 사라진 듯한 느낌을 주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몸 쪽으로 파고드는 슬라이더의 각은 게임이 풀리는 날은 클린트 허들을 감독을 놀라게 했고 포수인 요르빗 토레 알바의 미트를 경악시켰다. “꼭 제가 마무리나 셋업으로 가기를 바라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주변 분들이 지적해주는 한계점에 제가 안주해버리는 듯한 인상이 든다면 다음의 김병현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서 싫습니다.” 쑥스러움도 많이 타는 편이고, 그 흔한 연애 기사조차 김병현의 기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지만, 운동하는 중에는 그 누구보다 집중력이 뛰어난 선수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한계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 선수이기도 하다.

김병현은 콜로라도 시절에도 트러블 메이커라는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주관이 뚜렷한 만큼 자신이 공경해야 하는 선수들이나 기타 선후배들에게는 최대한 친절하게 하려고 한다는 선수가 김병현이라고 한다. 김병현이 친정팀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와의 게임에서 타석에 더 이상 애리조나 멤버로 뛰지 않을 것이라는 루이스 곤잘레스가 들어섰을 때 신발 끈을 묶었던 장면은 바로 그 예 중에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기립 박수를 자신도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웃으며 이야기하던 당시 상황은 평소 그의 생각을 잘 표현해주는 모습 중 하나였을 것이다.

<사진-gettyimag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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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쿼터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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