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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터메인's mentalgame

김병현. PNC 파크가 기회의 땅이 되기를.(1)

빛과 그림자. 2008. 2. 23. 15:40
 김병현이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로 이적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한국의 언론들은 그의 심경을 궁금해 했다. 그러나 김병현은 현재 인터뷰를 하고 싶을만큼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부터 마이너리그 계약을 통보받기도 했고, 신시네티 레즈는 그와 맞지 않다고 판단이 들었는지 계약서에 잉크를 묻히지 않았다. 김병현은 지난 1999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유니폼을 입으며 메이저리거로 첫 발을 내딛게 된다. 그리고 그 이후로 그는 피츠버그에 오기까지 6벌의 유니폼을 갖게 되었다고 보도되었다. 그러나 김병현의 경우에는 실제 몸 담고 있던 팀은 5개 밖에 되지 않기에 6번째 둥지지만 5개의 유니폼만 보유하게 되었다. 친정팀으로의 복귀를 두번이나 하는 우여곡절을 겪은 결과다.한국 메이저리거였던 김선우(현 두산)도 참고로  6개의 소속팀에 머물렀었다.



한국인 선수 김병현은 1999년 5월 29일 뉴욕 메츠 전에서 데뷔전을 치르게 된다. 그 장소는 메츠의 홈인 세어 스타디움이었고, 김병현은 이 날 게임에서 1이닝을 던지는 기억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9회말 마이크 피아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면서 그가 첫 세이브를 세우는 순간은 한국인들 모두 짜릿한 충격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이 당시만 해도 김병현의 머리는 고교생을 연상시킬 정도로 짧은 커트 머리였다.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는 김병현이 우승한 다음해인 2002년경부터 확인할 수 있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당돌한 신인이라는 평가와 함께 애리조나를 이끌 최고의 클로져라는 섣부른 판단까지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그것이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 김병현의 성장세는 정말 눈이 부셨다.



2001년 10월 21일 내셔널리그 챔피언 쉽에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의 김병현은 애틀란타의 홈인 터너필드에서 승리의 순간을 맛보게 된다. 이 때까지만 해도 그의 시대가 화려하게 열린다고 생각했다. 아니 실제로 그러했다. 그는 마지막을 장식했으며 당시 포수는 데미안 밀러였다. 그리고 앞으로 만날 팀도 자신 있었다.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자신감이 너무 넘쳤다는 점 정도를 꼽아야 할까. 월드 시리즈에서 맞설 팀은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 뉴욕 양키즈였다. 랜디 존슨의 51번과 김병현의 49번을 합하면 100이 되지만, 양키즈는 분명 숫자 100보다 더 큰 수만큼 느껴질 만한 팀이었다.



뉴욕 양키즈는 역시 만만한 팀이 아니었다. 그러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의 원투펀치는 너무나 강력한 방패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랜디 존슨과 커트 쉴링을 찾을 수 있었다. 애리조나는 1차전과 2차전을 9-1과 4-0으로 애리조나 팬들을 광분시켰다. 미국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단 기간 우승 가능이라는 자막이 일찌감치 보였다. 그러나 3차전을 양키즈가 가져가게 되면서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그리고 김병현의 드라마는 이 때 다시금 쓰여지게 된다. 사실 게임에 앞서 김병현을 괴롭힐 양키즈 타자들의 명단은 많이 열거가 되었지만 그 중 가장에 기억에 남는 선수는 다름 아닌 티노 마르티네스, 데릭 지터 그리고 양키즈 3루수인 스캇 브로셔스였을 것이다.





김병현은 3대 1로 앞서고 있던 상황에서 커트 쉴링에 이어 세 타자 삼진을 잡아내며 뉴욕을 한 때 숨죽이며 한국 팬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정말 게임은 9회말 2사후부터라는 이야기가 있듯이 2사 1루에서 티노 마르티네스에서 중월 홈런을 맞으며 동점을 허용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어진 연장 10회말 양키즈의 공격에서 2사 후 데릭 지터에서 우월 끝내기 홈런을 맞으며 그대로 주저앉고 만다. 시애틀에서 마무리를 맡은 바 있던 사사키 가즈히로가 9회에 가장 상대하기 어렵다고 토로하던 뉴욕 양키즈의 저력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던 순간이 바로 당시였다. 그리고 한국 팬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던 당시는 순간 공포의 도가니로 수식어를 바뀌던 것도 당시였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김병현에게 2001년 11월 1일 뉴욕 양키 스타디움은 사실상 지옥에 있는 것처럼 괴롭고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아마 그런 기분을 한국 팬들도 느꼈을 시점은 다름 아닌 브로셔스가 9회에 터뜨린 동점 홈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 홈런이 빌미가 되어 시리즈 스코어를 2대 3으로 역전시키게 되었다. 밥 브렌리가 4차전에서 믿기지 않는 홈런을 허용한 김병현을 뚝심 있게 기용했지만 결과적인 실패로 돌아갔기에 그 충격은 더 컸다. 스캇 브로셔스가 환하게 웃던 모습은 당시 또 한 번 마운드에서 주저앉은 김병현과 너무나 대조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일 것이라 생각했다.





이 쯤 되면 99년 삼성 라이온즈의 임창용처럼 김병현 또한 후유증이 한 동안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김병현이 몸 푸는 모습이 카메라 렌즈에 쉽게 잡히지 않는 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갔다. 실제로도 그 이후 김병현에게 그 이후의 월드시리즈에서의 등판기회는 사실상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애리조나는 정말 강했고, 김병현이 우승했을 때 밝힌 인터뷰처럼 야구는 팀 스포츠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장면을 당시 다이아몬드 백스는 분명 보여주었다.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6차전 승리에 이어 7차전도 루이스 곤잘레스의 연장 끝내기 안타로 승리하며 창단 4년만의 첫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마리아노 리베라가 고개를 푹 숙이던 모습은 아마 당시 야구팬들이라면 모두 지켜봤을 장면이었다. 반대로 김병현이 얼굴에 미소를 띄고 있는 장면은 야구팬들이 놓치지 않았을 장면이기도 했었다. 2002년 4월 2일 김병현은 한국인 메이저리거로는 최초로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받게 된다. 반지는 애리조나 구단주인 제리 콜란젤로씨가 샌디에고 파드레스와의 게임을 앞둔 홈 구장 뱅크원 볼파크에서 전달했던 것이다.

<사진-gettyimag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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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쿼터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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