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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터메인's mentalgame

강팀 롯데가 되기를(9)

강팀 롯데가 되기를 2008. 2. 24. 15:26
부제 : 야구. 아직 끝나지 않았다.(2)

"너 진짜 거기 가냐? 야. 나 싸인 좀 받아줘라. 김형석은 안 온대? 김형석이 진짜 멋진데 말야.”-강팀 롯데가 되기를(8)에서- 한 친구가 내게 이런 이야기로 다가왔다. 이 친구와 나는 매일같이 특훈이랍시고 동네 놀이터에서 턱걸이와 멀리 뛰기, 그네 여러 번 타기, 철인 5종 경기(미끄럼틀 빨리 타기, 놀이터 빨리 돌기를 비롯한 몇 가지 게임들) 같은 과학적인(?) 훈련법으로 하루하루를 맞이했다. 그 녀석이 내 친구 유석이었다. 방학숙제도 같이 했고, 초등학교 3학년 시절. 담임선생님께서 일기 내용이 같은 녀석으로도 소개를 해주시곤 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녀석이랑 나와는 매일같이 야구를 했기 때문이었다. 이 녀석이 야구를 가르쳐주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즐기는 법은 알려주었다.

야구는 근성이 아닌 즐기는 것을 알려준 녀석.

지금 이 친구는 뉴욕의 중심에서 회사를 다니면서 아침을 토스트와 우유로 대충 해치우고 나가는 샐러리맨이다. “어머니 잘 계시냐?” 몇 년 전 미국에서 반가운 전화 한 통화가 걸려왔다. “요새 야구 보냐? 최동창은 모하나 몰라.”녀석이 메일로 한 번씩 보내는 내용에는 당시 베어스 선수들의 기억이 빽빽하게 정리된 일기장처럼 나열되었다.

유석이와 나는 유열이라는 이름을 가진 해태 광팬 소년이 원하는 근성의 야구를 표방하지(?) 않았다. 그리고 녀석과 나는 같은 반에 같은 동네였다. 지금이야 동네 골목 야구가 사라졌다는 것이 맞겠지만, 그 때만 하더라도 주말은 우리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이었다. 심지어 오락기로 오락을 하더라도 유석이와 나는 야구 오락만 했었다.(유열이 이야기는 10편에 쓰기로 한다.)

“이번에 7단지에 사는 박정호가 꽤 야구를 잘한다더라. 걔가 6학년 5반 에이스래.” 유석이와 겜보이(삼성 오락제품)을 하면서 둘이 주고 받던 내용이었다. “야. 잘하던 못하던 그건 모르겠고, 쳐서 넘기면 된다.(웃음)” 유석이와 나는 그냥 웃으면서 집을 서로 오가며 항상 그렇게 놀았던 기억이 난다. 함께 쓸데없이 동네 약수터에 물 뜨러간답시고 공부보다는 야구 얘기하고 노는 것에 집중했다. 항상 내가 무얼 하자고 했을 때, 싫다고 말 한마디 안했던 녀석이 유석이었다. 그리고 녀석이 항상 곤경에 처할 때, 그 친구에게 시비 거는 애들에게 다가가서 겁을 주던 역할은 내가 하기도 했었다. 녀석이 에이스였다면, 나는 에이스 도우미처럼 남고 싶었던 생각이 난다. 그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이 재미있겠지만.

동네 야구 연승.

“나 완투해도 괜찮겠지? 이 게임은 무조건 내가 끝내야 해.” 우스갯소리지만 난 이 때 기억을 중학교 시절 이상훈과 강상수가 고대시절에 이렇게 의견 교환했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생각이 났다. 유석이는 마운드에 섰을 때, 좌완투수로 나섰다. 그리고 공은 정말 느렸다. 느림의 미학이라고 해야할까나. 그러고도 공이 맞아나가지 않았던 것이 신기했었다. 복판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었는데, 아이들이 못 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감으로 밀어붙이는 것이었는지 지금도 사실 잘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건 아이들이 제대로 치지를 못했다. 녀석 이야기로는 그게 진정한 두뇌피칭이라고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그 친구는 머리가 좋았다.

유열이에게 영향을 받은 것도 있고, 그 이후로 내 승부욕이 굉장히 강해진 것도 있지만 나 또한 어디서 본 것은 있는지 공수교대가 되면 아이들과 다 함께 원으로 둘러싸고 개선점을 개진해나갔다. “야. 민태는 이게 안 되는 것 같으니까 이렇게 하자. 한구는 너무 2루에 붙어 있어. 우전안타 나오면 어떻게 할래. 1루와 2루 사이에 붙어 있어야하지 않을까?” 학원도 가지 않고, 그냥 야구에 미쳐 살았던 것 같다. 동생이 항상 오빠 학원갈 시간이야라는 이야기를 10번 넘게 해야지 겨우 속셈 학원에 가서 문제집을 끄적이다가 집에 뛰어와서 야구를 보고, 라디오로 들었다. 오죽하면 속셈학원 선생님이 집에다가 야구 때문에 걱정이라는 이야기까지 하셨을까.

그러나 그런 부분이 나 뿐만은 아니었는지 유석이도 항상 그런 이야기를 듣곤 했었다고 한다. 다행인건(?) 유석이는 전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학생으로 분류가 되어서 녀석의 부모님은 그렇게 걱정을 안 하신 듯 했다. “야. 우리 야구 선수해서 넌 롯데가고 난 OB 지명 받게끔 부모님 설득하는게 어때?” 녀석은 항상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자신이 지명받고 타석에 들어서는 음악이 이승환의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같은 가요였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친구가 이 친구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천편일률적인 타석에 들어서는 음악이 OB 베어스는 신디사이저로 울려퍼지곤 했던 때가 당시였기 때문이었다. 하긴 난 신승훈의 ‘날 울리지마’가 내 타석에 울려퍼지길 바랬었다.

유석이와 나는 한자공부도 그 때 당시 참 열심히 했었다. 부모님께 여쭤보기도 하고, 실제로 옥편을 찾아가면서 신문에 한자로 나온 선수들의 이름 중에 모르는 것들을 공책에 적었다. 그리고 10번씩 써가면서 그 선수들의 모르는 한자를 외웠던 기억이 난다. “야. 강기웅의 강짜가 무슨 강짜고 획순이 어떻게 되냐?” 우리는 그것 때문에 서예도 같이 다녔다. 한자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보면 참 재미있다. 야구 하나 때문에 한자까지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난 커서 통계학이라는 거 공부도 해보고 싶다. 심리학이나 말야. 그러면 선수들에 대해서 더 많이 알지 않을까?” 유석이가 아주 어렸을 적 유석이 어머니께 몇 가지를 어디서 들었나 보다.  

우리는 학교가 끝나고 이승환의 2집에 수록된 곡인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을 매일 같이 들으며 “김광림 엉덩이 장난 아니야.”라는 이야기를 건내곤 했었다. 김광림이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안타를 쳐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김광수의 별명이 다람쥐라는 이유만으로 어린이대공원 다람쥐 통은 꼭 집에 오기 전에 타던 놀이기구였다.

“한국에 나가니까 가장 먼저 가게 된 곳 중에 하나가 야구장이긴 하더라. 근데 태평양이 없어진 것은 알겠는데 현대가 아닌 센테니얼이라는 그룹은 처음 듣네. 요새는 한국에서 야구 얘기 안한지 꽤 되었다는 이야기를 삼촌이 해주시더라구. 넌 아직도 야구 보냐? 롯데는 요새 잘하고 있냐? 너 박정태랑 김민호 좋아했자나.” 2008년 2월의 구정. 유석이가 내게 메일로 보낸 이야기들을 보면서 그냥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롯데가 강팀이 되는 그 날까지 가는 일이야 험난하겠지만 우리가 함께 했던 동네야구의 추억이 어느새 잊혀지는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너 진짜 거기 가냐? 야. 나 싸인 좀 받아줘라. 김형석은 안 온대? 김형석이 진짜 멋진데 말야.” 김형석이 정말 멋졌는지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시간이 그리고 야구의 열기가 앞으로도 남아있을까. 올 겨울은 유난히 춥게 느껴지는 것은 다 이유가 있나보다.

<사진-OB 베어스 팬북, 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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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쿼터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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