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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터메인's mentalgame

강팀 롯데가 되기를.(7)

강팀 롯데가 되기를 2007. 11. 15. 00:07
“바라바라. 니 어디고?” 밤 12시쯤이었던 것 같다. 2007년 5월 23일. 이 날은 이왕기가 이종범에게 마지막 끝내기 몸에 맞는 볼로 게임을 끝낸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전화가 끊이지 않았던(?) 날이기도 하다. “니 무조건 지금 신천으로 온나.” 책방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는 형님께 전화가 왔다. 이미 다른 롯데 팬들은 모여 있단다. “제가 지금 집에 가서 오늘은 뭐 좀 해야 하는데 다음에 제가 술 한 잔 형님 사면 안 될까요.(웃음)”  무조건 오라는 전화에 처음에는 갈까 말까 하다가 며칠 앞두고 중요한 시험이 있어서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냥 웃어보였다. 오늘 롯데 팬들이 많이 속상했겠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스쳐갔다. 나 또한 그 날 응원 방에서 미친 듯이 달렸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새벽 1시가 다 될 무렵. SG 워너비의 핸드폰 벨소리가 다시금 울리기 시작했다. 또 다시 전화였다. 그리고 나는 웃어보였다. 액정에 ‘롯데 팬’이라고 쓰여져 있기 때문이었다. “내다.” 짧은 한 마디가 그간의 통화음을 참기 힘들었는지 많은 것을 쏟아내는 듯 했다. “니 어디냐? 신림동으로 니를 오라고 할 수는 없고, 니랑 내랑 만날 수 있는 가운데인 신천에서 만나자. 어떻게 생각하나 니.” 야구를 보면서 가장 친하게 지내는 형 중 한명이었다. 잘까 어쩔까 생각 중이었는데 도저히 이왕기 선수의 몸에 맞는 볼 때문에 책이 안 봐진단다.

“롯데 올해 이러다가 또 꼴지 하겠다. 미치겠다. 진짜. 승질 나서 잠이 안 온다.”
“아니. 형 올해 야구 안본다면서 올해 야구를 왜 이렇게 열심히 보세요.(웃음)”  형이 내 얘기가 머쓱한 듯 웃어 보이며 입을 다시금 열었다. “야구는 임마. 그냥 쉬는 시간에 즐기는 거지.” 롯데 팬들에게 야구는 종교 그 이상의 존재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스쳐 지나갔다. 쉬는 시간에도 즐길 경지에 이르기 위한 종교 말이다.



종교.


“28번 훈련병 쿼XX!X!!” 2001년 9월. 입영열차를 늦게 탄 나는 당시 관등성명을 크게 소리치며 논산을 휘젓고 있었다. “니 28번. (군대를 늦게 가서) 노장인데 잘 뛰 댕기네.” 옆에 있는 전우조 친구들이 킥킥 웃었다. “(허구연씨 목소리로) 주행광이가 28번인데 니도 논산 에이스 함 해야재” 다시 킥킥 웃음이 쏟아져 나왔다. 28연대 1대대 10중대의 어느 날. 우리 기수는 모두 마산, 창원친구들이었다. “바라바라. 오늘 편지 왔는데, 롯데 올해 이렇게 마감하나 부다. 내 몬 산다.”

“아니. (훈련병들 번호) 30번아. 백인천씨 아직도 야구 감독 하나. 우리 아버지가 촛불 시위 한다는데 대체 모하는 기고. 아. 머리 삭발하고 여기 있으려니까 수련하라는 것도 아니고 미치겠다.”
토요일 저녁. 언제나 일요일을 앞둔 저녁은 항상 분주하다. 그리고 훈련병 친구들의 목소리가 편지 나눠주는 시간에는 더욱 높게 목소리는 바깥의 소식들을 풀어놓는 것으로 북적거렸다.

그런 북적거렸음을 누군가 들었을까. 그 때, 분대장(조교)의 말이 행정반 마이크를 통해 울려 퍼졌다. “명일 종교 행사 참석자는 설문지에 모두 싸인 할 수 있도록. 이상.” 1소대 선임 분대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아이들이 “아. 내일 종교 행사 가야하나?”라고 여기저기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 다시 분대장이 마이크를 끄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아. 근데 롯데 야구는 왜 이러는 기고. 아. 미치겠다.” 그 때 웃지도 못하고 전우들과 킥킥 거렸다. “롯데가 종교 행사면 을마나 조을끼고. 입대하기 전에 야구 보는데 김휘곤이 보고 우리 아버지랑 마 미치는 줄 알았다.”



옆에 앉아있는 27번 훈련병이 답답한 듯 다시 한 마디 했다. “쿼터메인아. 우리 아버지가 마산 중앙고 선생님인거 알재? 아버지가 오늘 온 편지 보니까 아~들 보고 이제부터 배구 보잰다. 이게 경남의 현실이다.” 전우들끼리 또 한 번 편지 온 것을 보면서 키득거렸다. 국방일보에는 야구에 대한 이야기가 정말 단신처럼 나왔다. 그나마 조교들이 보기 때문에 당시 우리 같은 훈련병들은 집에서 보내주시는 스포츠 신문 스크랩으로 하루를 보내고 일희일비하곤 했다. 이미 군대 간 친구들은 내가 스포츠. 특히 야구에 중증 환자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입대한 날을 기준으로 모든 스포츠 신문들을 스크랩해서 나눠서 주기적으로 보내줬다.

“26번 니가 오늘 얼매나 어리버리 하고 다녀서 그런지 상수햄 접때 또 삽질한 것 아이가?(웃음) 모르겠네. 상수햄이 26번 아이가.” 29번 훈련병이던 친구도 한마디 거들었다. “모 상수햄은 그러고 싶어서 그러겠나. 그래도 금마는 부상 한 번 없다 아이가. 개근상이라도 팀에서 주야 한다.(웃음)” 26번이던 친구가 웃었다. 당시 이렇게 우리 중대 아이들은 모두 하루 일과가 끝날 무렵 야구 얘기만 했다. 조교들도 경남 출신들이 종종 있어서 그런지 와서 롯데 이야기를 하곤 했다.

많은 롯데 팬들은 야구가 종교 그 이상이라고 답을 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또한 어렸을 적부터 야구의 룰도 모르는 어린 아이였다. 롯데의 허규옥이 삼성으로 넘어온 허규옥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나는 롯데 팬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간혹 하고 이렇게 중독성이 강했다면 야구에 대해서 갸우뚱 했을지도 모른다. 윤학길을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나 또한 이 심오한 종교에 관련된 서적을 찾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역시 하고 있다.

내게는 군 시절 수양록과 학습장이라는 조그마한 끄적일 공간이 있었다. 전우들과 그 뙤약볕 밑에서 훈련을 받고 내무실로 돌아올 무렵. 우리는 그렇게 2002년 월드컵 라인업을 짜고 있었다. 군대 종교 행사 가서도 초코파이가 롯데 것임을 알고 너무나 반가워했었고, PX에서 취식물 구입 때 롯데 제품의 빼빼로나 칸쵸가 간혹 섞여 나오면 선수들의 얼굴들이 그렇게 스쳐지나갔다. 내 젊음의 한 가운데, 롯데가 있었다. 그 때가 바로 2001년 훈련받던 논산에서의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우리들이 있었다.

<사진-장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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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쿼터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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