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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허울뿐인 개혁 바닥이 드러나다.

스크랩, 끝나지 않는 수열. 2008. 2. 12. 21:03
허울뿐인 개혁 바닥이 드러나다.(원문보기 클릭)(by 박동희)

 못 믿을 신상우 총재_하일성 사무총장 체제

허울뿐인 개혁 바닥이 드러나다

이상국 전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오른쪽)은 뛰어난 수완가로 꼽혔지만 돈 문제는 불투명했다.(사진 제공=삼성 라이온즈)

2005년 11월 21일 경기도 가평 베네스트CC. 어느 스포츠신문 야구인골프대회에 참가한 야구인 A씨의 표정이 예년 같지 않았다. 동료 야구인과 골프로 우의를 다질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 A씨는 이 대회에 나갈 때마다 신이 났다.

그러나 이날은 좀체 흥이 나지 않았다. 대회장 분위기가 그랬다. 그해 상반기부터 불거진 두산의 경영권 다툼으로 박용오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는 프로야구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상국 사무총장도 광고업체 선정을 둘러싸고 법원을 들락날락했다. KBO 수뇌부가 흔들리는 사이 야구계는 표정을 잃어가고 있었다.

대회가 끝난 뒤 저녁식사 자리가 마련됐다. 그때였다. 생전 말 한마디 없던 김응룡 삼성 라이온즈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잡았다. 김사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지금 한국프로야구는 위기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조만간 프로야구는 사라진다. 과거의 인기를 회복하려면 야구계가 지금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고 일장 연설을 했다.

침체된 야구판을 걱정하는 야구인 출신 CEO의 따끔한 지적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자리엔 KBO 수뇌부가 앉아 있었다.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김사장이 작심하고 내뱉은 말처럼 들렸다.” A씨는 덧붙여 “KBO 사상 첫 구단주 출신인 박용오 총재 체제는 정치인 출신 총재에 비해 입지가 약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김사장의 발언은 ‘쿠데타 사전 예고’처럼 들렸다”고 회상했다.

그날부터 사흘 뒤 신상우 전 국회 부의장이 KBO 총재에 내정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신 전 부의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10년 선배이자 김사장의 4년 선배였다. 공교롭게도 그즈음 롯데 자이언츠에 복귀한 강병철 감독과 심판 출신의 KBO 경기운영위원 김양경 씨도 부산상고 출신이라 야구계에는 ‘월남 스키부대에 이은 최강의 부산상고 낙하산 부대가 KBO를 점령했다’는 농담이 퍼졌다.

김사장은 신 전 부의장의 KBO 총재 내정 소식을 듣고 “나와는 무관한 사항”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이를 믿는 야구인은 적었다. 신상우 총재 체제는 그렇게 첫 발을 내디뎠다.

흔들리는 이상국 사무총장

2006년 1월 10일 7선 국회의원 출신의 신상우 전 국회 부의장이 제15대 KBO 총재로 취임했다. 신총재는 취임 일성으로 “현대 문제 해결과 새 야구장 건설”을 약속했다. 이즈음 야구계에서 또 다른 움직임이 포착됐다. 차기 사무총장을 노리는 이들이었다.

이상국 전 KBO 사무총장은 야구계에서 정치적 수완과 행정력을 겸비한 이로 꼽혔다. KBO 행정에 어두운 신총재가 6년 동안 사무총장을 맡으며 노하우를 쌓은 이총장을 계속 기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신총재도 이총장을 신임하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이총장에겐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다. “이총장 재임 시절 KBO는 불투명한 행정으로 뒷말이 많았다. 이총장 본인도 돈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야구인 B씨의 말이다.

이총장은 2005년 3월 잠실야구장 옥외광고물사업자 선정 대가로 광고물 사업자에게 금품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기소됐다. 이미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법의 심판을 기다리던 중 발생한 일이었다.

그해 6월 대구지법은 이총장에게 배임수재에 관해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이총장이 광고업자에게 청탁과 함께 돈을 받은 것은 인정하나 업무 연관성을 입증하지 못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004년 3월 열린우리당 배기선 의원에게 정치자금 영수증 없이 3천만 원을 건넨 혐의(정치자금법 위반)에 대해서는 원심대로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이 끝나자 8개 구단 사장들은 회의를 열어 이총장의 복귀를 결정했다. 확정 판결도 나기 전에 ‘무죄 선고’를 이유로 이총장을 서둘러 불러들였다. 당시 모 구단 사장이던 A씨는 “그만큼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총장은 1999년 12월 사무총장에 취임한 뒤 6년여 간 재임하면서 타이틀스폰서 유치와 중계권 협상 등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뒀다. SK 와이번스와 KIA 타이거즈 창단 등도 그가 주도한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KBO의 투명 행정을 외치던 8개 구단 사장들이 이총장의 도덕성 문제에 눈을 감은 건 아이러니였다. 어쨌든 이총장은 8개 구단 사장들의 힘을 빌려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를 비롯한 야구계 일부에서 거세게 반발했지만 미풍으로 끝났다. 이총장을 반대하는 세력들은 이번에는 돈 문제 외에 “이총장이 특정 지역 사람들로 KBO를 채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KBO 주요 보직을 출신지별로 나눌 때 공교롭게도 이총장과 같은 고향 출신이 많았다. 특채도 자주 있었다. 어느 면에서는 역차별일 수 있는 주장이었다. 이총장이 취임한 1999년 이전부터 KBO에 다닌 직원도 적지 않았다.

하일성의 등장

한창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열리고 있던 2006년 3월. KBO의 한 관계자는 어느 젊은 야구인에게서 “조만간 KBO 사무총장이 바뀔 겁니다”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 말은 무엇을 뜻했던 것일까.

신상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뒷줄 가운데)가 3월 23일 장충리틀야구장 개장 기념식에서 어린이 선수들과 함께하고 있다.(사진 김대영)
당시 ‘포스트 이상국’을 노린다고 소문난 4명의 후보가 있었다. 현역 해설위원 두 사람과 심판 출신 야구인 K씨, 단장 출신의 C씨였다. 이 가운데 두 해설위원이 유력한 후보였다.

“처음에는 신총재와 대학 동문인 한 해설위원이 유력했다. 선수협에서 민다는 소문도 들렸다. 그러나 그를 도와줄 야구인이 많지 않았다. 또 다른 해설위원은 가장 늦게 후보군에 등장했지만 야구계 인맥이 탄탄했다.” 야구인 M씨의 얘기다.

M씨가 두 번째로 말한 이가 하일성 해설위원이다. 당시 하일성 위원은 야구인들의 모임인 일구회 회장을 맡고 있어 야구인들과 교류가 잦았다. 일구회 회원인 원로야구인들 뿐만 아니라 몇몇 젊은 야구인들이 하일성을 차기 KBO 사무총장으로 밀기 시작했다.

“이상국 사무총장의 낙마설이 파다하던 때였다. 만약 사무총장을 바꿔야 한다면 이참에 KBO를 개혁할 수 있는 사람을 뽑자는 의견이 나왔다. 찬밥 신세였던 야구인 출신을 KBO에 보내자는 바람이 보태졌다. 누군가 총대를 메야한다면 하일성 씨가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이 났다.” D씨의 증언이다.

그렇다면 당시 하일성 위원은 일부 야구인들의 추대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우리가 설득하기 전에 본인이 이미 결심을 끝낸 상태였다.”

다른 경쟁자를 제치고 하일성 위원이 강력한 차기 사무총장 후보로 떠올랐다. 때맞춰 야구계 일각에서 “(하일성이) KBO에 들어가기 위해 정치권에 줄을 대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자인 모씨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루머도 돌았다.

일부 야구인들도 그들 나름대로 하일성 위원을 사무총장으로 밀기 위해 열심히 뛰었다. 계속되는 D씨의 증언.

“T씨가 신총재의 아들 신아무개 씨와 막역한 사이였다. 과거 야구선수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신아무개 씨는 프로야구에 관심이 많았다. T씨를 비롯한 소수의 야구인이 신아무개 씨와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야구계 현안에 대해서도 대화를 주고받았다.”

T씨와 몇몇 야구인이 신아무개 씨에게 ‘하일성 사무총장안’을 신총재에게 건의해 달라고 부탁했는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또 이 만남이 ‘야구해설가’ 하일성을 ‘KBO 사무총장’ 하일성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는지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KBO 개혁을 위해 하위원을 밀겠다는 이들이 한창 민감한 시기에 KBO 수장의 아들과 만난 건 주위로부터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다.

SPORTS2.0은 T씨에게 사실 확인을 부탁했다. T씨는 신아무개 씨와 관계를 묻는 질문에 “전혀 알지 못한다”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당시 신아무개 씨와 만났었느냐는 질문에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과 만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2006년 3월 WBC가 열린 도쿄. “조만간 KBO 사무총장이 바뀔 겁니다”라고 말한 이가 바로 T씨였다. 그는 하일성 위원의 사무총장 추대를 위해 가장 열심히 뛴 야구인이었다.

KBO 관계자도 그런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T씨의 귀뜸은 이상국의 퇴진과 하일성의 등장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대세는 이미 하일성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KBO 개혁을 구상하다

2006년 5월 8일 이상국의 후임으로 하일성이 KBO 제6대 사무총장으로 취임했다. 하 신임총장은 취임사에서 “야구팬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경기장 현대화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임기 중 2개 팀을 더 창단해 10개 구단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 신임총장을 도운 핵심 측근들의 목표는 따로 있었다. KBO 개혁을 통한 프로야구의 발전이었다. K씨의 증언이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한 뒤 1995년을 정점으로 인기가 급속도로 떨어졌다. 프로야구 발전에 앞장서야 할 KBO의 무능과 불투명한 운영이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KBO 주요 인사들의 전횡과 보신주의는 큰 문제였다. 하 신임총장은 처음부터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다. 24년간 한 번도 시도하지 못한 KBO 개혁을 반드시 이뤄야 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K씨가 말한 KBO 개혁이 과연 인적 청산을 뜻하는 것인지, 만약 인적 청산이라면 어떤 이유로 그런 생각을 했는지 궁금했다. K씨는 단호하게 “과감한 인적청산이었다”고 말했다.

덧붙여 “KBO는 비대한 공룡이었다. 8개 구단 사장들도 KBO의 구조조정을 원하고 있었다”는 말로 주관적 판단보다는 KBO 시스템 변화를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즈음 하총장도 지인들과 만나면 “필요하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촉하는 이들에겐 “KBO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니 조금만 시간을 달라”며 설득했다.

하총장이 해야 할 일은 한 가지 더 있었다. 야구인들의 중용이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뒤부터 야구인들은 자신들이 KBO로부터 철저히 소외됐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상국 전 총장 때 피해의식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개혁을 꿈꾸던 하일성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의 요즘 표정은 밝지 않다.(사진 선원익)
“야구계의 중심은 야구인이다. 경기인 출신만큼 해당 종목을 잘 아는 이가 누가 있나. 그러나 이 전 총장 재임 기간에 어느 야구인도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때 KBO 내부에 야구인이 있었나.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이 전 총장이 단독으로 일을 처리했고 KBO 직원들도 우리(야구인)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일구회 어느 중견회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 전 총장은 KBO에서 야구인을 철저히 배제했을까. “당연히 야구인이 들어가면 야구를 잘 아니까 이것저것 간섭하고 견제하지 않겠나. 그게 싫었던 거다.”

과연 그럴까. 이 전 총장 재임 때부터 KBO에서 근무하고 있는 어느 직원은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이 직원은 “당시 KBO에 야구인 출신 인사가 없었던 것은 맞다”며 “야구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은 국가대표 선발을 위한 임시 경기위원회나 행정적 처리를 위한 간단한 위원회 정도였다”고 말했다.

하총장은 야구인을 중심으로 한 야구행정을 다짐했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려 뭔가를 준비했다. 곧이어 가시적인 결과가 나왔다.

허울 좋은 개혁

2007년 새해 벽두부터 KBO가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내용은 국제교류와 유소년 야구 육성을 위해 기존 KBO의 2부 3팀제를 1본부 4부 1팀제로 개편한다는 것이었다.

전해 12월 도하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한 대표팀의 부진이 개편의 표면적인 이유였다. 당시 대만에 졌을 때 하총장은 “서울에 돌아가면 대한축구협회처럼 기술위원회를 조직해 대표선수 선발을 맡겨 오늘 같은 망신을 당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개편안을 자세히 뜯어보면 영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국제교류와 유소년 야구 육성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국제부는 부원 없는 부장 1명, 유소년 야구 육성팀 역시 팀장 1명 뿐이었다. 정작 개편안에서 눈길을 끈 건 기획위원 신설과 8명으로 신설된 기술위원회였다.

“기획위원으로 내정된 인물은 신총재의 부산상고 후배다. 하총장과 사무총장 경쟁을 벌인 인물이기도 하다. 하총장이 어떤 생각으로 선임했을지 말하지 않아도 알지 않나.” 야구인 B씨의 말이다. B씨는 기술위원회에 뽑힌 인사들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8명 가운데 전해 경기운영위원을 맡던 이들을 제외하고 하총장 측근으로 분류된 이들이 몇 명 참여했다. 한동안 야구판을 완전히 떠났다가 어느 날 느닷없이 KBO에 복귀해 현장 감각이 요구되는 중요한 자리에 앉은 인물도 있었다.”

기술위원에 포함된 TV 해설자들도 구설수에 올랐다. 애초 하총장이 이들을 영입한 이유는 “해설자들이 가장 경기를 많이 보고 선수들의 특성을 잘 파악해 대표선수를 뽑는 데 적임”이라는 것이었다.

국어사전에 해설자는 “문제나 사건의 내용 따위를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하는 사람”으로 돼 있다. 시청자의 시각에서 보면 해설자는 경기의 재미를 더해주는 프로그램의 안내자다.

그러나 TV 해설자는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방송사의 공신력을 바탕으로 시청자에게 유무형의 영향력을 행사하게 마련이다. 미국이나 일본에선 TV 스포츠 해설자를 여론을 이끄는 오피니언 리더로 간주한다.

야구계의 현안을 가장 직접적으로 시청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TV 해설자들이 KBO 기술위원회에 들어간 건 자칫 여론의 흐름을 차단하거나 호도할 수 있는 일이었다. KBO로서는 그런 효과를 누릴 개연성이 있었다. 나중에 2명의 해설자는 국가대표 상비군의 코칭스태프를 맡기도 했다.

언론의 지적과 야구 관계자들의 불만에도 개편안은 그대로 시행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감독 출신의 한 야구인은 “KBO 안에 자기사람이 없었던 하총장은 심판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첫 억대 연봉 심판이 나왔다. 선참급 심판들을 제치고 젊은 심판들을 팀장으로 선임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총장의 자기사람 만들기가 사실이라면 심판 문제는 확실히 실패했다. 심판 사이에 내부분열이 일어나 대혼란이 야기됐기 때문이다.

하총장 추대에 나섰던 일부 야구인들이 바라던 ‘야구인을 중심으로 한 야구발전’은 ‘하총장 측근의 중용과 자기사람 만들기’라는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애초 주장했던 KBO 주요인사들의 인적청산도 물 건너가고 있었다. 하총장 취임 뒤 물러난 KBO 임직원은 현재까지 아무도 없다.

일구회 회원 Y씨는 하총장에게 KBO 임직원 교체가 없는 이유를 물었다. 돌아온 답은 의외였다. “그 사람들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Y씨는 “정말 능력이 뛰어나서인지 뛰어나다고 믿게끔 행동들을 해서인지 그도 아니면 뭔가 발목을 잡혀선지 모르지만 그 말을 듣고 나서 다시는 그 문제와 관련해 묻지 않았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에 하총장은 처음부터 인위적인 인적정리는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금도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업무능력에 하자가 있거나 나태한 직원이라면 KBO가 아니라 어디라도 정리대상이다. 그러나 KBO 직원 대다수가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 나와 총재님은 임기가 있지만 나머지 임직원은 공채로 들어온 사람들이라 함부로 ‘해고’를 운운해선 안 된다.”

1월 15일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실에서 회장 손민한(아래 왼쪽)이 현대선수들과 현대살리기를 호소하는 기자 회견을 열고 있다.(사진 이휘영)
항간에는 하총장이 취임 전 자신을 도운 야구인 모씨를 사무차장(현 운영본부장)으로 앉히려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계획이 자꾸 미뤄지자 모씨가 하총장을 찾아가 거세게 항의했다는 소문도 들렸다.

한 야구인은 “어쩌면 인적 청산을 통한 KBO 개혁은 그들만의 자리 나누기를 위한 허울 좋은 외침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여러분의 KBO 총재, 우리들의 정치인 총재

야구계가 신총재에게 바랐던 건 정권과 끈이 닿는 노련한 정치인 출신 총재의 수완이었다. 신총재 본인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취임사의 대부분을 “현대 문제 해결”과 “새 야구장 건설”에 할애했다. 그러나 결과로만 따지면 내세울 게 없다. 일각에서 ‘야구 문외한인 정치인 총재를 앉힌 까닭’이라는 분석이 나와도 할말이 없는 셈이다.

그러나 의외로 신총재의 야구사랑은 야구계에 정평이 나 있다. 지방 어느 구단의 한 단장은 “야구에 대한 조예가 깊고 야구계 현안을 꼼꼼히 챙기는 분”이라고 강조했다. KBO 내부에서도 “정치인 출신 총재답지 않게 건성으로 일을 처리하는 법이 없다”는 평가가 많다.

“문제는 신총재 주변 사람들이다. 모 구단 사장의 경우 절대 이사회에서 말하는 법이 없다. 그런데 회의만 끝나면 신총재와 독대를 한다. 이사회에서 아무리 떠들어봤자 백날 헛수고다.”

어느 구단 사장의 불만이다. 한때 야구인들 사이에서 모 사장이 신총재를 대신해 국내 야구계를 ‘섭정’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심지어는 이 사장의 구단 입맛대로 KBO가 흘러간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반대로 말하는 이도 없지 않다. “그 사장이나 되니까 신총재에게 직언을 하지 다른 사장들이야 말 한마디 제대로 하나. 앞에서는 침묵하고 뒤에서 아쉬운 소리 하니까 그런 오해가 생기는 거다.” 야구인 J씨의 생각이다.

구단의 불만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내용도 가지각색이다. 특히나 KBO 재정의 불투명성과 방만한 운영은 모든 구단이 고개를 내젓는다. 그런데도 신총재에게 항의를 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구단 사장은 없었다는 게 KBO 관계자의 증언이다.

어째서 그럴까. 모 구단 단장은 자신을 가리켜 “전령 신세”라고 말했다. “구단 사장들이 이사회에 참가했다 돌아오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이게 문제인데 당신이 나 대신 KBO에다 말하시오.’ 항상 그런 식이다. 사장은 듣고만 오고 단장은 따지고.” 그는 잠시 뒤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아시오?”하고 반문했다.

고개를 흔들자 “기자나 팬들이 보기에는 신상우 씨가 단순히 KBO 총재로 보이지만 구단과 모그룹 등 우리 입장에서는 정치인 신상우가 오버랩된다. 야구인들이 기대하는 신총재의 정치적 수완이 엉뚱하게 발휘될 때 구단과 기업이 입을 피해는 상상이 가고도 남을 거다.”

지난해 정규시즌이 거의 끝나갈 무렵 하총장의 지인인 야구인 L씨와 모 구단 사장이 만났다. 구단 사장이 그즈음 야구판을 두고 푸념을 늘어놨다. 한참을 듣던 L씨가 이렇게 물었다.

“아니 총재님께 아무도 직언하지 않는다고요? 하총장이 있지 않습니까?” 이때 구단 사장이 “요즘 하총장 별명이 뭔지 아시오?”하고 되물었다.

상대가 고개를 흔들자 그 사장이 털어놓은 별명은 ‘라이터 하’였다. 신총재 옆에서 라이터로 담배불을 붙여주는 게 하총재의 역할이라고 구단 사장들이 붙인 별명이었다.

KBO 관계자에 따르면 신총재와 하총장은 지난해부터 사이가 벌어졌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총재가 하총장 대신 다른 인사를 불러 상의를 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며 “하총장은 창과 방패를 동시에 잃어버린 신세가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KT 인수 건 때 신총재는 하총장 모르게 일을 진행했다. 어느 정도 확정된 상태에서 “지금부터는 하총장이 진행하시오”하며 일을 넘겼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지난해 12월 베이징올림픽 야구 아시아예선이 열린 대만에 신총재는 현대 문제를 해결하느라 오지 못했다. 대신 엉뚱한 사람이 대만에 도착했다. 이 사람은 KBO 관계자와 같은 대만행 비행기에 탑승해 안내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야구대표팀 김경문 감독과 함께 식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총재의 아들 신아무개 씨다.

그는 2년 전 야구인 T씨와 신임 KBO 사무총장 선임문제로 밀담을 나눴다는 오해를 받았던 바로 그 사람이다. 야구팬으로서 대표팀 경기를 보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이번에도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다.

SPORTS2.0 제 88호(발행일 1월 28일) 기사

박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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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쿼터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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