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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터메인's mentalgame

왼손은 거들 뿐.(4)

왼손은 거들 뿐. 2008. 1. 19. 21:23
고교시절 가장 벅차면서도 값진 시간 중으로 생각되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과연 무엇이 있었을까요. 저는 기억에 남을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 가장 값진 시간 중에 하나로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작은 것에도 굉장한 감사함을 느끼면서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소중한 시간에 친구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농구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게 고3 스트레스를 푸는 유일한 낙이라면 낙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제가 나온 고교의 경우에는 농구 골대가 7개 정도 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4개는 올 코트를 할 수 있는 골대였고, 나머지 3개는 소위 말하는 하프코트(반코트만) 뛰어도 되는 구조였었죠. 점심과 저녁을 앞 둔 저녁시간은 항상 농구 골대는 꽉꽉 찼습니다. 운동장은 정말 식사시간은 종로 3가의 저녁시간보다도 굉장히 붐볐을 정도로 말이죠. 축구 골대는 두 개. 그러니까 한 게임 정도가 열릴 수 있는 구조를 지녔지만 5게임 정도는 열리는 듯 했고, 농구 골대는 그마저 힘들기 때문에 미리 가서 자리를 맡아놓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항상 골대를 사수하기 위해서 밥을 빨리 먹고 식사시간에 나가곤 했지만, 사실 재미있게도 저는 나가면 축구를 했던 기억이 더 많습니다. 축구가 좋아서라기보다는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지만;;) 워낙 잘하는 친구들이 골대에 붙어 있었기 때문이죠. 3학년 때야 친구들이 사실 후배들이 쓰는 골대를 밀어내고 하는 경우도 가끔 있었지만 그것도 잘해야 밀어내던지 하죠.(웃음) 저희학교가 서열 같은 것이 강하지 않다고 기억을 해서 그런지 후배들과 다 어울려서 소위 말하는 짜지기를;;;

짜지기에 대해서 잠깐 설명을 붙여보면 올 코트던 하프코트던 점수내기에서 밀려 지는 팀이 물러나고, 이기는 팀이라고 하더라도 2연승을 하면 쉬어주는 차원으로라도 게임을 빼주는 방식이 바로 이것입니다. 당시만 해도 농구의 인기가 대단해서 코트가 모자랐습니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축구를 하는 인원이 적어서 축구를 하기에는 편했구 말이죠. 농구를 하려면 너무 시간이 많이 걸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친구들과 그 짧은 시간이라도 농구공을 만지고 싶어했더랬죠. 특히 모의고사가 끝나는 날은 정말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모두 시험 끝나고 학원 수업이 대개 시험이라고 쉬다보니 정말 갈때까지 농구를 했었죠.

내 친구 KOBE

학창시절 저부터 조금 특이하다고 생각하면서도(웃음) 친구 중에 특이한 녀석이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농구와 관련지어서는 농구를 너무 좋아하다보니 아무래도 그 선수 스타일에 맞춰서 자신을 가꿔나가는 친구들이 여럿 있었습니다.(모 물론 저도. 웃음)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는 저와 절친했던 별명이 KOBE라는 친구였습니다. 이름이 정말 코비는 아니고 별명이 코비였었죠. 이 때만 하더라도 사실 코비가 그렇게 두드러지던 선수는 아니었고 등번호 8번의 그냥 말 그대로 신예였습니다. 그러나 이 친구의 경우에는 코비를 보자마다 코비가 언젠가 코트를 지배할 날이 올 거라면서 쉬는 시간마다 루키지, BECKETT지와 함께 저를 찾곤 했었습니다.

코비라는 친구의 경우에는 학창시절 MLB를 포함해서 야구 이야기를 가장 많이 했던 엘지 골수팬에 농구 왕 팬이었습니다. 물론 이 녀석이 한동안 연락이 안 되다가 근황을 들어보니 국가고시에 붙어서 국록을 먹고 있다고 하던데, 사실 이 녀석이 이 길로 갈 것이라고 생각이 안 들었죠. 하여간 이 친구는 스포츠를 너무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는 친구입니다. 오죽했으면 NBA 드래프트장에 직접 갔단 이야기도 있었을 정도였었죠. 대학 농구부 중에서 유난히 중앙대학교를 좋아했고, 대학진학도 중앙대에 가겠다는 녀석이 수능이 더 잘나온 덕에 본인이 원하지 않던(?) 오빠 부대학교에 진학 한 것은 조금 특이할 만한 사항이겠네요.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이 녀석이 대학 진학했을 때 “송영진이 내가 군대갔다오면 괴물이 되어있겠지.”하면서 웃던 그 친구의 얼굴이 떠오르네요.

실제로 이 친구는 제가 살던 분당에서 거리가 좀 있던 성남의 낙생고등학교에 농구부 선수로 스카웃 제의가 들어온 적이 있었습니다. 본인도 워낙 하고 싶어했구요. 키가 조금 문제가 되긴 했는데, 워낙 이 친구가 농구 선수의 꿈이 강하다보니 전학 가고 싶어서 답답해하는 모습을 몇 차례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부를 잘하던 녀석이라서 그런지 녀석 부모님께서 워낙 반대하셨기에 그냥 저희학교에서 졸업을 하게 됩니다. 이 친구가 당시 수능 모의고사만으로는 아마 전교 3등인가까지 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 녀석의 경우에는 항상 NBA를 보고 오면 실제 게임에서도 그것을 꼭 써먹고 집에 가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쇼맨쉽도 엄청 강해서 보는 이들이 없는데도 박수유도 하는 모습을 보인다던가 레슬링 챔피언이 우승하고 취하는 묘한 세레머니를 농구에 도입하기도 했었죠. 처음에는 “쟤가 제 정신인가. 정말 소울의 본 고장에서 태어난 애인가;;(머리가 곱슬이었습니다.)”하면서 보기도 했는데 친해지고 나서는 왠지 저도 던컨의 웃음이라도 지어야 할 듯한 분위기더군요. “너가 딱 좋아할만한 스타일이 던컨이다. 너 옷차림만 봐도 알 수 있지.”옷을 튀게 입지 않으려고 하고 공부던 운동이던 기본기가 중요하다고 보던 저에게 그 친구는 농구공을 건내곤 했습니다.

던컨이 팬들에게 폭넓게 광적인 인기와 편승하지는 않았어도 조금 각별한 존재였다면 코비는 ‘그 코비’에게 정말 각별한 존재였고 정말 드물게 스포츠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친구였습니다. 그리고 그 녀석은 제게 드리블이라던가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으면 와서 원포인트 레슨형식으로 코치처럼 다가와서 “야. 이건 말이야. 이렇게 하는거야.”라고 모션을 취해주면서 나름대로(?) 카리스마를 과시하기도 했었습니다.

농구 드래프트.

고교 때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 더 덧붙여보겠습니다. 가장 고3때 기억이 나는 것은 농구 드래프트였습니다. 다름 아닌 체육 실기평가가 이것이었는데 중간고사는 농구 자유투와 개인기를(화려한 슛. 가령 더블클러치 같은 것들.) 봤다면 기말고사는 반 아이들을 드래프트해서 팀별로 나눈 뒤 토너먼트를 치루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KOBE는 추첨권을 받아서 1라운드에 배치가 되었고 KOBE를 비롯한 8명의 1라운드 친구들이 반 친구들을 드래프트 하는 형식으로 뽑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6라운드까지 거진 돌았고, 남은 친구들은 조금 약한 팀에 들어가게 되었죠. 저희반이 제 기억에 50명 정도였으니 아마 맞을 겁니다.

아이들은 당시 나름 고심하면서 픽을 선사했습니다. 지금 누가 이 친구를 픽한다면 나는 누구를 찍어야 하고 포지션이 겹치지 말아야하고 여러 가지 계산을 했었죠. 워낙 학교에서 농구 인기가 좋다보니 체육 선생님과 함께 이런 행사가 너무나도 즐거웠고 고3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날려버리는 기회 또한 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제 경우에는 높은 순번은 아니지만 중간정도에서 센터로 뽑혔던 기억이 나네요. KOBE라는 친구의 경우에는 센터를 뽑지 않고 스몰 포워드나 가드를 보면서 속공 능력이 좋은 친구들 위주로 뽑았던 기억이 납니다. 센터와 파워포워드로 1라운드에 뽑힌 친구들을 사실상 막기 힘들다고 봤기 때문이었죠.



참고로 1라운드에서 센터와 파워포워드로 뽑힌 친구들은 학교 대표였습니다. 학교 대표라고 해봤자 조금 우스운 감이 있겠지만 저희 학교는 농구부 창단을 검토했을 정도로 친구들 기량이 굉장히 좋은 편에 속했습니다. 실제로 농구를 했던 친구들도 꽤 있었고 말이죠. 센터를 보던 친구는 2미터 정도 되었고.(197인가로 기억이 되네요.) 파워포워드를 보던 친구는 키는 175정도이지만 앨리웁 덩크를 하는 친구였습니다. 그냥 서전트로 천정이 닿는다는 것이 저는 농담인 줄 알았는데, 이 친구는 천정이 닿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애들끼리도 정말 웃긴 것이 고교 때 농구해서 농구 유학 가겠다고 자신의 별명을 하나씩 갖고 있었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철수야. 길동아가 아닌 가넷, 오닐, 페니, 모닝, 코비 이런 이름들로 별명을 붙여서 부르곤 했었죠. 저는 성현준;;;지금 생각하면 더 웃긴 것은 담임선생님이 페니 학교 왔니 모 이런 식으로 물으시곤 하셨다는;;;

당시 KOBE의 조는 학교에서 가장 센터 플레이가 좋다는 친구와 맞붙어서 패배하게 됩니다. 제가 속해있던 조의 경우에는 첫 게임을 운 좋게 잡고, 서전트 점프 좋다는 친구와 만나게 되구요. 저 때만 하더라도 친구들과 이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농구도 하고, 그리고 게임이 끝나면 따뜻한 호빵과 난로에 몸을 쬐던 기억이 납니다. 축구 반 대항 시합은 방학이어도 항상 있었고 말이죠. 요즘은 운동장이 텅텅 비어있더군요. 사실 모 어제 오늘일도 이제는 아닌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만. 야구하는 아이들이 줄면서 야구의 열기가 식었음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고, 지금의 현대 사태가 일어난 배경 중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농구도 조금 걱정이 됩니다. 신장은 좋아졌다지만 열의가 있는 친구들. 정말 즐길 수 있는 친구들은 다들 다른 것에만 몰두 하는 것 같아서 말이죠. 그러고보니 정말 친구 KOBE가 그립네요. 녀석과 학교 등교할 때 인사로 마크 맥과이어, 새미 소사 홈런 세레머니로 인사했던 별난 친구였는데 말이죠.

<사진-슬램덩크, bballo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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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쿼터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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