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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터메인's mentalgame

난 널 유혹하는 거란다.(4)-마지막 회

빛과 그림자. 2007. 11. 22. 12:49
신명철은 한 때 FA로 영입한 정수근보다 더 신뢰받는 타자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예상했었다. 그리고 조성환도 조성환이지만 신명철이 있기 때문에 정수근의 효율성을 두고 정수근의 무용론까지 과장스럽게 대두가 될 정도로 매년 그의 기대치라는 것은 비판과 함께 존재했었다. 어찌 보면 정말 우스운 이야기에 가까운 ‘말 그대로 예견’이었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사실 허슬 플레이는 물론 팀 내 가장 믿을만한 타자로 평가받기에 이런 위치까지 사실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언젠가 터질 것이라는 기대치 때문에 이런 평가가 나오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연세대학교 재학시절 게임에서 지면 밤새도록 스윙을 하다 잤다고 했던 그에게 사직은 늘 겨울일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2군에서조차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더욱 예상하지 못했다.

뭐 물론 롯데 팬들에게 앙금으로 남아있을 백인천 감독 이후에도 신명철의 겨울이 끝난 것은 아니었고 사실 그의 진로가 어떻게 될지 예측이 쉽지 않았다. 조금 날씨가 풀린 것 일뿐 그가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거나 정말 한 번쯤 터져주는 날은 손꼽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몇몇 팬들이 이야기를 신명철의 재능이 아까웠던지 김명성 감독님만 계셨다면 이라는 단서가 달린 이야기도 했지만 그런 걱정만큼 그의 나이 또한 더욱 걱정과 어우러져 안타까워져 갔다. 그의 프로에서 재능을 가장 안타까워 할 분 중 한분은 바로 작고하신 김명성 감독님이었지만 그보다 더 안타깝게 생각했던 이들은 바로 신명철 그 자신과 팬들이었다는 것을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양상문 감독의 부임과 그 이후의 항로.

사실 양상문 감독의 내야 리빌딩의 주역으로 떠올랐던 신명철은 양상문 감독의 황태자로 매번 언론에서 집중 조명 받았다. 게다가 구단에서 주목하고 있던 조성환은 본인에게 그리고 팀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무슨 일인지 병역비리로 자리를 비우게 되었기에 그의 가치는 다시 한 번 재조명되기에 이른다. 신명철에게 정말 더 이상의 기회가 있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기회는 한 번씩 꼭 찾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해보다 자신과 팀이 그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다. 양상문 감독 재임시절 그는 빈약한 타선에서 터져줘야 하는 보증수표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물론 더 큰 문제는 2004, 2005년에도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정말 여느 해와 다름없이 그렇게 시간만 흘러 보낸 것이었다. 2군용 선수처럼 굳어진 듯한 플레이가 연이어 터진 것이다. 주전 붙박이로 기용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팬들의 야유. 이렇게까지 흐르자 분노한 팬들은 인내심에 한계에 다다른 듯 안타치고 세레머니 한다고 팬들에게 지적하기까지 이르렀다. 세레머니 할 시간에 차라리 뱃을 한 번 더 휘두르고 자라는 이야기가 구장에 울려 퍼졌다. 잘해도 위축될 수 밖에 없었고 정말 예전처럼 항상 잘하고만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인고의 시간은 너무 길었고 달콤하지 못했다. 말 그대로 프로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기록과 실력 그 외에는 사실상 냉정한 프로세계에서 존재하기란 어렵다. 팀에서도 이 쯤 되다보니 고심을 거듭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2005년 말. 신명철을 비롯한 젊은 선수들 양아들론이 양상문 감독의 패착 중 하나로 지적이 되면서 양 감독은 롯데 감독을 물러나기에 이른다. 신명철의 시대도 이렇게 되나 싶었고, 노력의 대가가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기에 언제나 그랬듯이 전혀 보상받지 못한 스토브리그는 찾아오고야 말았다. 이렇듯 신명철은 롯데 시절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선수도 아닐 수도 있을 것이고, 감독, 코치 눈 밖에 났던 선수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랬기 때문에 2006년에도 ‘양명철'로 한 때 이름 불리던 신명철은 '강명철'로 그에게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지게 되었던 것이었다. 하나 흥미로운 점은 강병철 감독 당시에는 타선 리빌딩에 일가견이 있다는 강감독이 신명철의 롯데 생활 마지막을 담보로 운영을 하기도 했었다는 점이었다.

한 선수가 이렇게 감독들에게 눈에 들어왔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아마시절 슈퍼스타 재능을 갖고만 있어서였을까. 팬들 입장에서도 이렇다보니 의문점이 생기기 마련이다. 게다가 강병철 감독이 타선을 보강하겠다고 이야기 하던 차에 수많은 선수들의 이름이 오르락 거리면서도 신명철의 이름은 빠지지를 않았다.

2006년 개막 삼성전에서도 주전 2루수 명단에는 신명철의 이름이 올라와 있을 수 있었고 실수를 해도 괜찮다고 어깨를 두드리는 수준에서 그쳤다. 이런 부분들을 바라봐도 결론적으로 따지고 보면 양상문 감독 재임 시와 강병철 감독 재임 시 인터뷰에는 재미있게도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신명철을 팀의 핵심 선수로 지속적으로 꼽았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보여준 것 없는 선수가 핵심선수라니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름 석 자가 다시 한 번 전광판에 새겨져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당첨 확률 높은 유혹의 신명철 복권'을 쥐고 있던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개막전 에러를 저지르는 등 실책을 하면서 팬들에게 다시 한 번 걱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서도 강병철 감독은 우리 팀의 주전 2루수는 신명철이다 라고 못을 박으며 많은 신뢰를 보냈던 당시. 몇몇 팬들은 계약금 문제로 운동을 소홀히 한 것 아니냐, 실력에 비해서 너무 많은 금액을 받은 것 아니냐며, 그의 프로정신에 대한 부분을 지적했지만 속내는 그와 달랐다. 당시만 해도 몇 명이나 알아주려나. 계약금 문제로 팀과 갈등을 겪을 때도 혼자 특타 하면서 시간을 보낸 이가 신명철 이었다는 것을.



2006년이 추억이 될 수 있을까.

롯데는 2006년에 정말 잊고 싶은 추억이 하나 있다. 바로 원정연패 기록이다. 그 와중에도 롯데가 2006년 원정연패를 당하면서, 2005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롯데에서 번트를 가장 잘 대는 선수라고 평가받던 선수는 누구인가라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작전 수행능력이 있는 선수라고 받던 신명철이라는 보도 자료는 유난히 눈에 띄었다. 당시 롯데 공격의 유기적 흐름이 그만큼 형편없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고 강병철 감독이 번트를 지나치게 좋아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사실 신명철은 당시만 하더라도 이모저모와는 별개로 팀을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었다. 희생번트는 자신을 진정 희생하지 않으면 쉽게 공격의 실마리와 연결시키기 힘든 부분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심지어 이 희성번트 싸인이 났을 때 강공으로 가기 위해서 일부러 번트를 실패시키는 경우도 우리가 확인만 쉽게 못했다 뿐이지 존재했고 또 여전히 존재한다. 그 와중에 신명철이 그나마 조금이라도 빛이 날 수 있었던 이유이다.

물론 신명철은 2006년에도 개막전 이후 결국 자신의 커리어에 먹칠을 하는 1할 대의 빈타에 그쳤다. 이렇다보니 변명할 껀덕지가 생길 리 만무하고 번트만 대야하는 위치였는지도 모른다. “신명철이 나왔네. 햄버거 사러가자.” 심지어 잠실야구장에 갔을 때 그가 타석에 들어서면 타 팀 팬들은 먹거리를 사러 나가기 위해 자리가 듬성듬성 비우기도 했었다. 롯데를 응원하는 팬들은 담배를 피우러가는 시간이 바로 신명철의 타석이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팬들의 원성, 야유, 그리고 선수로서는 가장 힘든 팬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괴로움. 팀이 연패를 당했을 당시 한 결 같이 특타를 자청하던 이가 박현승, 최경환, 그리고 신명철이었다. 시험을 못 봐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친구, 무언가 벽에 막혀서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신명철에게는 너무 와 닿는 말이었을 것이다. 매일같이 배트를 휘두르다가 잠이 들었고, 피가 베였지만, 그냥 행복했단다. 그리고 잘해야만 했단다.

데뷔할 당시만 해도 어린 이대호를 대신하여 팀을 장악할 수 있는 카리스마, 스타성 모든 것을 갖추었던 선수였다. 그러나 터질 것 같기만 한 성적은 결론적으로 그의 발목을 끝내 잡고야 말았다. 수비만 되는 반쪽 선수였다면 팀에서도 그에게 애초부터 기대를 걸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롯데에서 바란 부분은 그런 것도 아니었고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기에 팀도 고민이 많아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국 2006년이 끝나갈 시점. 신명철은 좌완 투수를 급구하나는 팀의 방침으로 권혁을 영입하기 위한 1차 협상이 틀어진 후 강영식을 얻어내기 위한 카드로 사용되었다. 시즌 전 연봉 협상문제로 팀과 잡음이 오갔다는 이야기로 팀을 결국 떠나는구나라는 이야기도 한간에 흘러나왔지만, 신명철 본인도 롯데에서 결과물 없이 이렇게 떠나는 것이 아쉬웠다.

시즌이 들어서기 전부터 두산과 현대, 삼성, SK등 그를 원하는 팀들은 정말 많았다. 그의 재능을 분명 인정을 했고,  노력을 알았지만 왠지 안 풀리는 선수는 존재한다는 것을 타 팀에서도 알았기 때문이다. 삼성은 스물여덟 살의 젊은 신명철(?)을 영입함으로써 내야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게 되었다는 글을 본 기억이 난다. 하지만, 삼성이라는 팀 자체가 유망주들을 기다려주는 팀 컬러가 아니라면 그에게는 또 한 번 서러운 도전이 될 것임은 분명했다. 그에게는 또 한 번의 운이 따라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어떤 것이든, 계기는 주어졌고 주사위는 매일 던져졌을 것이다. 그를 응원하는 팬들은 그에게 마해영 처럼 그런 고생 끝에 기쁜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당시만해도 그에게 삼성 2루수 무임승차 티켓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은퇴를 심각하게 고민했던 박현승에게까지 밀렸던 것을 분명 그는 생각해야 할 시점이었다.



가을 야구.

신명철은 한 때 롯데의 심장이라고 평가받는 박정태가 처음 쓰던 번호가 14번을 사용했었다. 그리고 그가 기대치만큼 정말 잘 풀렸다면 지금은 마산의 아들로 대접받고 있었을 것이다. 신명철은 2007년 박종호가 주전 2루수일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삼성의 붙박이 2루수로 활약했다. 올 시즌 타율 2할5푼2리 105안타 5홈런 31타점 43득점으로 데뷔 첫 세 자릿수 안타를 기록한다. 어찌 보면 신명철 야구의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일지도 모른다. 시범 경기 때부터 주전 2루수로 기용된 신명철은 올해 삼성 선수 중 유일하게 전 경기를 출장했다. 그리고 페넌트레이스를 치르고 가장 중요한 포스트시즌 첫 경기에서는 톱타자라는 중책까지 맡기도 했었다. 그래서인지 신명철은 올 해 롯데와의 시즌 최종전을 앞두고 롯데에서 같이 뛰었던 후배들로부터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다.

"명철이 형,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좋겠네요."이대호가 가을 잔치 초대장이 끊긴 후 가을 단복을 입고 있는 신명철에게 건낸 이야기였다. 신명철은 그 이야기에 "내가 대호보다 낫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는 후문은 기사화 되기도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롯데 신명철이 아닌 삼성 신명철은 2007년 10월 9일 한화와의 준 플레이오프 1차전을 앞두고 코칭 스태프와 동료 선수들로부터 축하 박수를 받았다. 생일이나 특별한 기념일이라서가 아니라 신명철이 이날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출전하게 된 것을 축하한 것이다. 프로 7년차, 서른을 앞둔 신명철은 '가을 잔치' 참가가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가 2001년 프로에 데뷔했지만 입단 당시 팀인 롯데 자이언츠는 신명철이 입단한 2001년부터 4위 이상의 성적을 단 한 번도 올리지 못하는 순위로 마감했다. 그랬기 때문에 포스트시즌에서 동료 박한이가 웃어 보였고, 신명철이 멀쓱한 표정이 화면에 잡히기도 했던 것이었다. 사실 그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기회도 기회였지만, 그간 잃어버린 자존심과 자부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삼성은 어찌 보면 4강까지는 항상 갈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고, 선수들에게 저력을 심어줄만한 자존심을 세워줄 구단이었다.

선동렬 감독은 신명철을 두고 “전반적인 타격감이 연습 때도 좋다. 이 정도면 분명 통할 실력인데 개인으로도 안타까울 것이다. 톱타자로 기용 할 만큼 재능도 있고 톱타자로서 앞으로 점검도 충분히 해봐야 겠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 신명철을 가까이서 관찰한 한대화 수석코치 또한 "타격에 약간의 헛점이 있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큰 경기에서 긴장하지 않는 점은 누구보다 큰 장점이다. 게임 중간 중간에 실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기본 자질이 부족한 선수는 절대 아니다"고 덧붙이기도 했었다.

“은채아빠 넘 모라하지마라.”, “점마가 조금만 롯데에서 잘했어도 마산의 아들 소리 들을 텐데.” 사진을 찍어도 이상한 컨셉으로 찍고 싶지 않아도 찍히던 선수. 무얼 해도 뻣뻣해 보이던 선수. 롯데 팬들은 아직도 신명철을 두고 최근에 롯데가 키우지 못한 선수로 가장 첫 손에 꼽고 있다. 이제 신명철은 삼성 라이온즈의 선수이고 선수로 남을 것이다. 팬들은 마산고, 연대시절 당신의 미친 야구와 근성이 대구에서나마 뿌리를 내리도록 기도 할뿐이다. 2008년 개막전도 지켜보겠다. 당신을 많은 이들이 아쉬워하면서 돌아섰을 때에도 내게 세컨드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심어준 선수였다. 행운을 빈다.

<사진-롯데 자이언츠, Photo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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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쿼터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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