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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터메인's mentalgame

슈퍼스타 박철순.(3)

별을 쏘다. 2007. 12. 24. 00:06
물론 아직도 그것이 팜볼인지 무엇인지 알 길은 없지만, 그는 내게 “정말 야구는 몰라. 그리고 왜 구질 같은 거 물어. 그래서 내가 야구 오락도 안하자나.(웃음)” 그가 격투 오락을 즐기며 웃으면서 답했다. 그러면서 재미있게도 그는 옆에 있는 농구 오락과 축구오락은 전혀 하지 않았다. 바로 옆자리에 있는 오락 게임이었는데도 말이다. 오로지 그는 격투 게임이었다.

그러나 더 재미있는 것은 그의 실력은 단기간 동안이어서인지 모르지만, 빨리 늘지는 않았다. 소위 말하는 비비기를 익힌 듯은 했지만, 알아보는 팬들이 혹여라도 있을까봐서 였는지 사람들이 없을 때만 한 번씩 사용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카리스마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그 오락을 하면서도 그는 항상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듯 했었다. 그러나 눈치 없는 어린 나는 그 그리움이 무언지 당시에는 빨리 캐취를 하지 못한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그리움은 날이 갈수록 더해지는 듯 했다.

사실 형님을 알았을 때, 그리고 알고 지냈을 때, 친구들은 그 이후로도 박철순 선수와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었다. 그냥 옆에 있으면 인사만 할 정도였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그도 점점 와서 머무르는 시간이 짧아졌었다. 그것을 알게 된 것은 친구들의 제보도 톡톡히 한몫했었다. 축구 토너먼트가 뒤풀이 하듯이 열을 뿜고 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내가 없던 이후에도 수시로 오락실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존재가 그림자가 되어가는 어느 날인가부터 하루하루 갈수록 항상 카지노의 칩 쌓아놓듯이 올려놓았던 동전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말 그대로 ‘칩으로 만든 성’이 아닌 ‘칩으로 만든 별장’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가 단순히 오락할 비용이 점점 줄어든다는 느낌보다는 그가 떠날 시간이 임박해졌음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그는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분명 그와 내가 만난 바로 그 날은 내게 뜻하지 않는 만남을 열어주었던 그런 날이었다. 축구의 붐이 일어났을 때에도 학교에 등교하자마자 친구들이 가져온 조간신문의 스포츠 중에서 야구 코너만 보던 나라는 사람은 정말 특이한 아이 중에 한명이었고 그런 특이함을 알아주던 몇 안 되는 분은 바로 형님이었다. 삼성으로 팀을 옮겼지만, 아마무대의 신명철을 보면서 언제 저 선수는 롯데로 올까라는 기대감으로 롯데의 몇 년 후 예상타순을 짜고 있었고, 당시 박정태 선수는 플레잉 코치에 까지 이름을 올렸던 야구팬이 바로 나라는 녀석이었다. 그리고 형님은 단순히 그곳에서 만나고 있는 동안을 제외한다면 당시의 내게 언젠가는 'OB 항명사태'로만은 잊혀 지면 안 되는 베어스 코칭 스탭진의 한 축이었다.



마침표를 찍은 잉크는 아직 마르지 않았다.

“난 이제 조금 있으면 가야 한다. 모 요새 내가 여기에 자주 왔지만, 너는 원래 오면 안 되는 녀석이자나. 너가 대학가서 성공하면 운 좋게 또 만나지 않겠어.”그는 자주 말하는 사람은 아니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최소한 내게는 한 번씩 입을 열었다. 아니 어찌 보면 ‘그가 자주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또한 내 단정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최소한 내게는’ 이라는 이야기도 단정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가 그만큼 내게 살갑게 대해주었고, 불사조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따뜻하다고 느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당시 어린 팬이던 나와 주변 친구들에게 스타라면, 이야기 한 번 못하는 그런 인물로 느껴졌다. 그냥 바라만 보고 브로마이드를 벽에 붙여놓는 것으로 만족하는 그런 인물이 말 그대로 스타였었다. 사실 박철순 선수 또한 어찌 보면 이야기를 한 번도 못할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끔씩 든다. 내가 운이 좋았다면 좋았을 수도 있겠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운은 인연이라는 키워드와 연관된 인사말로 우선 마침표를 찍었다. 난 지금도 그것이 끝나지 않은 단락 1의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 아들은 절대 야구를 시키고 싶지가 않았어. 그리고 너 그거 아냐.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이야. 너 재수하면 내가 슬퍼할 것 같다. 인생의 재수도 아주 슬프지만, 대학교 갈 때 재수하는 것도 만만치 않겠지. 가서 공부 열심히 해라.” 기말고사가 아마 끝날 무렵으로 기억하던 그 때 그가 이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지면상으로 남기고 싶은 수많은 기억들은 이렇게 조각조각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면 난 10년간 정말 뵙고 싶은 분 두 분을 뵙지 못했다. 한 분은 고교시절이 되어서야 예전보다는 조금 나아진 범생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중학교 시절. 한 번씩 싸움과 말썽으로 때로는 학교를 떠들썩하게 했던 시절의 기억이 닿던 분이었다.

다름 아닌 내가 고등학교 가서 자리를 잡도록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던 중 3때 담임선생님. 난 아직도 그 분을 뵙지 못한지 10년이 넘어버렸다. 더 잘되고 뵙고 싶다는 그냥 막연한 생각이 있어서라는 당시 생각이 지금도 핑계 아닌 핑계로 아직도 남아 있어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실 적에 큰 여운 한 번 남기지 않았던 형님. 혹은 박철순 선수도 만나지 못한 것이 이제 10년이 되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TV 브라운관에서나마 가끔씩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아직 그와의 ‘인연의 여백’이 있음에 감사해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보다 반드시 더 나은 모습으로 뵙고 싶다는 그 형님에 대한 생각. 역시 여전히 간절하다. 그리고 이 두 분은 공통점이 있다. 과장이라면 모르겠지만, 내 인생을 바꿔 놓는 것에 정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부처님 손바닥.

그는 내게 헤어짐의 인사를 그렇게 보냈지만 TV라는 전달매체를 제외하더라도 그의 소식이 아예 끊겼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을 크게 느꼈을 때는 아마 뒤늦게 입대한 군대를 제대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보던 2004년쯤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뜬금없이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제대하고 중독성이 강한 야구를 안보겠다며 벼르던 내게 한 번씩은 박철순 선수의 소식은 그래도 항상 궁금했었기에 그 문자는 조금 더 각별했다. 당시 문자는 다름아닌 박철순 선수와 관련된 인터넷 댓글이 재미있는 내용으로 올라왔다는 것이었다. 흥미로웠다. 그리고 흥미로움이 단순한 흥미로움으로 끝나기 전에 친구는 바로 그 내용을 메일로 보내주었다.

그 댓글 내용이라는 것은 다름 아닌 박철순 선수가 한 명의 팬이 병원에서 재활치료 받는 동안 몸이 안 좋다 면서도 미소를 머금으며 야구공 한 상자를 밤 새워가며 싸인 해주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단순히 그가 부탁한 팬의 당시 제의에 오케이 했던 것은 아이들이 당신을 너무 좋아해서 기다렸기 때문이란다. 사실 그런 모습만 바라본다면, 그는 영락없는 어떤 카리스마적인 전사 혹은 엄하다 못해 무서운 선배가 아닌 동네 아저씨, 삼촌 혹은 형님 보다는 형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야구를 하는 몇몇 선수들이 회상하는 가장 엄한 선배로 박철순 선수는 항상 이야기 되는 선수였다. 그러나 최소한 내게는 달랐다.

그리고 시간은 갑자기 빠르게 흐르기 시작하였다. 그만큼 내게도 여유가 없어졌던 시간이 그만큼 많았다는 것도 맞을 것이고, 그간 야구에 대해서 예전처럼 꼼꼼하게 보지 않았던 것도 아마 그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2007년에 나온 기사는 도무지 지나칠 수가 없었다. 불사조에 대한 안타까운 소식 때문이었다. 검색 사이트의 스포츠 코너 메인 화면은 ‘박철순 대장암 투병. 대장암 초기라 다행’ 이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그리고 굳이 내 자신만이 아니라 많은 팬들은 예전의 박철순이 정말 고생하는구나 라고 걱정하는 눈빛으로 그곳을 주목하였다. 선수로서 수많은 재활을 했었고, 고생을 했지만, 무슨 이유인지 그가 또 투병생활을 한다는 것은 사실 당시만 해도 서글펐다.

야구계를 떠나 사업에 뛰어든 박철순은 골프용품 업체인 알룩 스포츠의 대표로 새 삶을 살고 있었다고 팬들에게 당분간 알려져 있었다. 내가 그를 알게 되었을 때가 1998년 여름이니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그때쯤 사업 구상을 하면서 이것저것 시작하였던 때인 것 같다. 이 소식을 접하기 전만 하더라도 너무 소식이 없어서 한 때는 걱정도 들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그가 잘 지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이런 소식으로 팬들에게 찾아왔다는 것은 안타까운 것도 사실이었다. 바쁜 생활 속에 마운드와 야구 계를 떠나있는 그의 소식을 접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고, 일개 팬이라지만, 팬들이 언젠가 챙겨줘야 할 것 같았다는 생각이 그저 무심코 들었다. 그것이 내 나름대로 레전드에게 할 수 있는 팬들의 인사일 수도 있다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불사의 신이 아닌 당신은 불사조.

박철순은 선수 시절 최고의 투수로 빛나던 순간도 많았지만 쓰라린 고통을 맛 본 시간이 더 길었다라고 평을 받는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22연승의 신화를 쓰며 24승4패, 평균자책점 1.84라는 눈부신 투구로 팀의 우승을 이끌며 성적과 인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거머쥐며 최고 중에 최고로 군림했었다. 그러나 그의 행복함에 무슨 그런 시련이 있었는지 그 이후에 허리디스크에 시달렸고 1988년에는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며 선수생명이 끝날 위기에 몰렸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진한 감동을 안기며 팬들로부터 '불사조'로 불렸다. 40세였던 1996년을 마지막으로 14년간 통산 성적 76승53패이라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그 답지 않은 평범한(?) 기록하고 마운드를 떠났지만 한국 프로야구에 크나큰 발자취를 남겼다.

몇몇 팬들 중에서 박철순의 야구를 진짜 느끼지 못한 사람들은 원년이 프로에서의 그의 전성기라면 사실상 너무나도 짧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기에 그를 기록적으로는 훌륭하지 않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1996년까지 거둔 개인 통산 성적은 76승53패20세이브. 13년 동안 첫해(1982년)을 제외하곤 10승을 넘긴 해가 없는 것은 그들의 생각에 탄력을 받게 해주는 자료일 수도 있겠다. 13년 동안 에이스였던 적은 딱 한 해. 그러나 그를 두고 에이스라고 하지 않는 이는 아무도 없다.

1982년을 포함, 박철순이 팬들과 함께 한 13년 동안 팬들은 박철순을 사랑했고 또 그의 꺾이지 않는 강한 정신력에 경의를 표했다. 박철순은 단순한 마운드를 지배할 줄 아는 1선발이자 에이스라기보다는 그라운드에서 초조하게 야구를 지켜보는 팬들에게 어깨를 매만져주며 다가갈 수 있는 정신적인 에이스였다. 뛰어난 투수였기 때문이 아니라, 굽힐 줄 모르는 근성으로 자신을 어필한 선수였기 때문이었다. 남들이 이젠 끝났구나 라고 생각했을 때, 그것을 보기 좋게 이겨버린 바로 그 사람. KIA 타이거즈의 이대진이 2007년 돌아오기까지에 대해서 많은 팬들이 미련이 강하게 남으며, 그가 재기 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처럼 많은 이들이 그를 에이스 오브 에이스로 꼽는 이유 또한 바로 여기에 있다.

아주 예전에 TV에서 방영되던 드라마였는지 영화에 그런 대사가 나왔었다. “저는 사람 중에서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철순을 좋아하는 사람과 박철순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 박철순. 나는 당신을 좋아했던 사람도 많았고, 시키했거나 미워했던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것 나이가 들어서야 알고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당신에 대한 신뢰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당신은 내게 이범수가 슈퍼스타 감사용을 찍기 위해 오른손잡이인 그에게 오른 손대신 왼손을 택한 만큼의 노력이라는 의미를 가져다 준 가져다 준 선수 그 이상이었다. 단순히 재능만으로 프로의 세계를 지탱할 수 없다는 것. 사회생활이 녹록치 않다는 것. 그것을 어린 내게 원 포인트 레슨으로 알려준 선수가 바로 박철순이었다. 그리고 야구를 바라볼 때 특정 팀의 팬이 아닌, 모든 팀을 하루쯤은 한 번씩 돌아보게 해준 여유도 가져다주었고 무엇보다 정말 꿈을 가져다 준 선수. 역시 당신이었음을 이제야 고백한다.

<사진-스포츠 동아, Photoro.com, 슈퍼스타 감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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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쿼터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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