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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터메인's mentalgame

야구의 신은 그를 에이스라고 하였다.

별을 쏘다. 2007/09/1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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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여름이었다. 갑자기 왠 99년 여름이냐고라고 묻는다면 솔직히 웃음밖에 안 나올지도 모른다. 당시 필자가 한 입시학원에서 재수하던 시절이었고, 당시 복학생 형들은 내 주변에 많이 있었고 야구 또한 언제나 그랬듯이 그라운드에서 펼쳐졌다. 그러나 시작부터 갑자기 야구 글을 남긴다고 하면서 왜 재수생활 얘기를 하느냐고 물으실 수도 있겠다. 바로 KIA 타이거즈의 에이스 오브 에이스 이대진에 대한 얘기를 이제부터 하기 위해서다.

1. 엉뚱한 이야기의 시작.

조금 나라는 사람은 가끔 보면 운이 좋은 사람 같다. 주변에 야구 선수들도 아주 조금은 알고 야구 선수들과 막역하게 지내는 사람들도 있고 야구를 좋아하는 분들도 있으니 운이 좋은 야구팬이 맞는 것 같다. 그리고 1999년에도 이런 일들은 우연히 생기고 말았다. 정말 야구와 나와의 인연이 정말 존재하는 것인지 되돌아보면 신기할 수 밖에. 당시 같이 공부하던 형이 얘기해주던 이대진이라는 선수가 아마 이 글의 주를 이룰 것이다. 그리고 내 개인적으로 느끼는 이대진. 알고 있던 이대진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그 뒤를 이어서 이 글을 꾸며지지 싶다.

솔직히 조금은 걱정되는 것이 원래 글을 잘 쓰는 편도 아니거니와 KIA 팬이 아닌 필자가 이대진이라는 투수에 대해서 글을 제대로 기술을 못할까봐 걱정이 조금 된다. 또한 이전에 어떤 글처럼 내가 직접 겪은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이야기를 빌어서 하는 얘기라 신빙성 자체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걱정도 된다. 그 부분이 조금은 이 글을 써나가면서 아쉽다는 이야기 우선 시작부에 남겨본다.

 재수 종합 반에는 이런저런 예비역 형들이 자리함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다니던 학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재수를 한다는 것이 자랑할 만한 사건은 아니지만 좋은 대학을 가겠다고 아등바등하던 필자의 재수시절 역시 군인 티를 갓 벗어낸 형들이 존재했었다. 그리고 당시 광주에서 올라와서 일하면서 공부를 하던 형도 한 명 있었다. 솔직히 그 형 이름까지는 지금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지금은 그 형과 같은 학원을 다녔다는 것만으로도 재수 생활은 참 행복했다는 생각이 든다.(광주에 있는 서강고등학교 출신이었다는 것 까지는 기억이 난다.)

많은 예비역 병장들이 역시나 그랬듯이 제대 후에 학교를 다시 가보겠다고 공부하던 그 형은 정말 운 좋게 나와 같은 야구광팬이었다. 5월까지는 일하면서 공부하다가 당시 내가 다니던 학원에 6월에 편입을 하게 되었던 그 형은 항상 똑같은 옷만 입고 다녔던 기억도 난다. 식사도 제대로 안하고 정말 집이 힘든 사람이라, 김밥 한 줄로 배를 채우고, 그것으로는 안 되겠던지 물로 배 채우던 그 형. 99년 얘기 같지가 않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하여간 그 형에게는 그랬던 시절이었다.

광주에서 올라와서, 쉽지 않은 생활은 그 형에게 힘이 들었을 수도 있다.어머니께 말씀을 드려서, 그 형의 도시락을 그 다음날부터 같이 싸왔던 기억이 난다.형은 내 짝이었다.그래서  그 날 이후로 형은 점심은 김밥 두 줄, 저녁은 내가 싸 온 한 개의 도시락을 먹게 되었고, 우리는 친해졌다.(며칠 후 , 같이 공부하던 복학생 형들이 그 형의 점심을 돌아가면서 싸주기도 했다.야구 얘기가 아니라, 여기까지는 수험생활 일기를 쓰는 기분이다.)그 형은 항상 9시 40분쯤이면 자율학습을 하다가 잠깐 나가곤 했다.스포츠뉴스를 보기 위해서라며, 하이트라이트라도 꼭 챙겨보던 것이었다.그리고 이 글의 주인공 이대진에 대한 기사가 조금이라도 나오면 항상 기쁜 얼굴로 돌아오곤 했다.

그 형은 학원에 등원하면, 언제나 신문의 스포츠 면을 보고 이야기를 해주었다.“해태 지면 안 되는데, 큰일이다.”야구로 시작해서, 그 형의 이야기는 야구로 끝났다.그 형은 아마 내가 야구팬이라는 것을 학원 생활이 끝날 때까지도 몰랐지 않나 싶다.그러던 어느 날, 형이 내게 “너 야구 좋아하냐?”라고 묻게 되었다.그러길래, “그냥 좋아하죠.자세한 것은 모르구요.”라고만 대답을 했다.“너 이대진 알아?”라고 형이 그 다음에 내게 다시 물었고, 난 당연히 “이대진 모르는 사람도 있나요?”형의 물음에 답했다.그리고 나서, 형의 가방에서 싸인볼을 꺼내서 내게 보여주었다.“내 친구다.타이거즈 이대진이...”그 형이 야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형과 이대진은 중학교때 동창이자, 친구였다고 한다.중학교 시절부터, 야구만 잘했으면 다행인데, 중학교 시절 공부는 거의 반에서 5등이 아니라,야구를 하면서도 전교 5등권이어서, 담임 선생님께서 굉장히 고민(?)을 하셨다는 얘기도 하였다.당시 담임 선생님께서 운동을 해서도 성공할 수 있지만, 공부에 더 자질이 있다고 보셨나 보다.학창시절, 아는 사람들은 이대진 선수가 거의 천재형이었다고들 했단다.그 형 또한 야구를 하려고 했지만, 솔직히 이대진의 독기와 재능을 보고 생각조차 못했다고 한다.

이대진은 노력하는 천재형이었다고 한다.야구를 잘하는 선수가 공부 못한다는 얘기를 듣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이 강해서, 숙제던, 시험이던 코앞에 있으면 야구연습이 끝나고도, 밤늦게까지 공부하다 취침하고는 했다고 한다.중학교 시절, 당시 형이 다니던 동네에서 야구를 한다는 친구들,야구를 하려고 했던 친구들은 굉장히 많았단다.그러나 최소한 그 형의 표현대로라면, 담임 선생님께서 “대진이만큼 공부 잘할 자신 있으면 야구해라”라고 하는 얘기에, 야구를 안한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그만큼 이대진이 만능이었다는 얘기겠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대진이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사례가 실제로 프로에서도 있었지만, 학창시절에도, 이것 때문에, 학교 코치들이 고민을 했다고 한다.타격에서도 굉장히 뛰어난 재능을 지녀서, 투수로 키워야할지, 타자로 써야할지 너무 고민이 되었다는 것이다.물론 당시 이대진은 투수로 남고 싶어했기에, 프로에 와서도 투수로 남겠다는 의지를 많이 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99년 형이 광주 집에 잠깐 내려갔을때, 이대진 선수를 잠깐 만났는데, 당시 굉장히 표정도 어둡고, 힘들어했던 시기라고 한다.99년 6월...해태시절 진흥고 3년 후배 김상진 투수가 세상을 떠나던 시점이 바로 그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형이 만났을때 가장 많이 이야기하던 선수 중에 한명이 좌완 이재만과 김상진이었다고 한다.특히 가장 아끼는 김상진을 위해서 김상진의 배번을 달고 뛰겠다라고 그가 인터뷰했을 당시에는, 필자 또한 인터뷰를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기억이 난다.기사에도 실렸듯이 이대진은 당시 정말 절박하게, 이 세상 어디에라도 김상진을 위해서라면 모든 약이라도 다 쓰겠다는 태세로 한동안 지냈다고 한다.

집안이 넉넉한 편도 아니었지만, 남자다운 면도 있어서, 친구도 주변에 많은 편이었고, 리더쉽도 있었다고 한다.여자들에게도 인기는 많았는데, 여자에게 관심이 없는건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야구와 공부 외에는 크게 관심을 안보이는 것 처럼 보였다라는 이야기도 해주었다.끝으로 형이 그러더라.“이대진도, 임마 수돗물 먹고 야구했어.”형이 수돗물 먹으면서 농담반으로 했던 이야기다.그 형은 아려나.박철순 형님도 전자 오락을 했다는 사실을...믿거나 말거나다.

2.종이 비행기.

친구와 식사를 하면서, 티비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이대진 선수가 나와서 던지고 있었다.에이스라면, 자신이 마지막이라고 생각이 드는 시점에서도, 한가운데 공을 뿌려줄 수 있을만한 마인드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이대진이 그 날 엘지 전에서 한가운데에 혼을 실은 자신의 공을 뿌리고 있었다.나라는 사람은 조금 남자치고는 눈물이 많은 편인지 눈물이 났다.종이 비행기를 날려주는 팬들,꽃가루를 뿌려주며, 그 꽃가루를 배경으로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이대진...감격하면서 공 하나에 집중하고, 모자를 흔들어서 답례하는 모습까지...

처음에는 그라운드에 뛰고 싶어서, 타자로까지 생각을 했었고, 도저히 아니다 싶어서, 마운드에서 딱 1년만 잘되면 미련없이 옷을 벗겠다는 그...엘지와의 게임에서 경기에 참가했다는 것만으로도 팬들은 감사했지만, 그 게임 자체를 잡는데 1등 공신이었기에, 팬들의 감동이라는 것은 이루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이대진은 최근 3년만에 처음으로 모든 훈련일정을 다 소화해냈다고 한다.예전처럼 강속구로 윽박지르는 피칭은 찾기 힘들어졌지만, 에이스적인 마인드와 노련한 게임운영은 여전하였다고 생각이 든다.

주니치 드래건즈에 전성기 시절, 입단 가능성도 제기될 정도로, 좋은 실력을 보유했었고, 선동렬,최동원과 더불어 한게임 최다 탈삼진을(16탈삼진,그 게임에서 10타자 연속 삼진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한다.) 기록하기도 했던 이대진..."아직, 80퍼센트 정도 밖에 준비가 안되었습니다.구속을 더 끌어올려서, 기다려준 팬들과 구단에게 보답하고 싶습니다."난 이대진이 구속을 올리겠다라는 인터뷰 내용과 달리, 그가 구속을 올려서 혹이라도 탈이 나는 것은 아닌가라는 걱정 아닌 걱정도 된다.오랜만에 마운드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그에게 바라는 것은 오직 건강하게 1년을 지내길 바랄뿐이다.해태에서 기아로 구단의 이름이 바뀌던 시절, 해태 특유 색깔이 사라졌다라는 평을 받기도 했었다.기아라는 이름으로 바뀐후, 이대진만 있었으면이라는 생각은 아마 타이거즈 골수팬이라면, 누구나 했으리라 생각한다.그는 건강하기만 한 것만으로도 팬들에게 큰 선물을 주었다.

트윈스 팬들이 이대진이라는 이름에 아파할지도 모른다.이대진이 타자로 첫 전향후, 그것도 본인의 첫 안타이자 결승 3루타로 게임을 뒤집었을때도 당시 팀은 트윈스였고, 마운드에 있던 투수는, 다름아닌 엘지의 심장 이상훈이었다.이 게임의 승리로 당시 타이거즈는 한 구장 최다 연승인 15연승을 기록한다.그리고 07년 지난 4월 7일...그는 엘지와의 한국시리즈에서의 기억을 다시 되찾은 듯 또 한번 트윈스 전에서 그의 부활을 알린다.한 게임 최다 연속 탈삼진이자, 한 게임 최고 탈삼진 게임을 이대진에게 선물했던 당시 현대 감독이었던 김재박 감독...현재 트윈스 감독님이신 김재박 감독은 본의 아니게 또 한번 그 자리에 있었다.트윈스 팬들에게는 어찌보면 정말 왜 우리가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야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어찌보면 이해가 간다.나 또한 자이언츠가 기록의 제물로 가장 많이 꼽힌 팀 중에 하나인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 하니까 말이다.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김병현이 예전 나는 다른 선수들은 모르겠지만, 이대진 선수는 정말 존경한다라고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베트에 공이 맞는 순간, 손에 떨림은 다른 투수들과 확실히 달랐다고 예전에 인터뷰 하기도 했던 미스터 인천 김경기부터 시작해서, 손민한,김병현,그리고 수 많은 에이스라고 평가 받는 투수들이 부러워하고, 존경한다라는 표현까지 써주었던 선수들 중에서 이대진은 단골손님이었다.

어느 기자가 그런 글을 쓴 것을 보게되었다.“깜짝 부활이 아닌 영원한 부활”을 기대한다고 말이다.그 말도 맞겠지만, 이미 이대진은 항상 팬들에게는 재활중인 이대진이 아닌, "에이스 오브 에이스 이대진..."마음속에서나마 항상,그리고 영원히 던지고 있는 투수로 이미 기억되고 있지 않았을까....그가 왜 "비운의 에이스"인가...비운의 에이스라는 표현은 그가 다시는 마운드에서 던지지 못했을때나 쓰는 말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야구의 신은 그를 에이스라고 하였다.그리고 그가 있었다.그가 바로 이대진이다.

-스포홀릭에 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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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쿼터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