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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터메인's mentalgame

강팀 롯데가 되기를.(6)

강팀 롯데가 되기를 2007/11/02 00:12
2007년의 어느 날. SK 와이번스와의 사직 게임에서 팬들이 갑자기 3루 원정 측 철망에 매달려서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고함으로 시작한 ‘악’은 비통함으로 이르기에 이르렀다. 거기까지 갔으면 끝이려니 하겠지만, 고함을 지르던 청년 몇몇은 갑자기 나가더니 사람들 없는 곳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SK와의 문학게임에서 계란을 던진 바로 이후에 열린 롯데의 홈 사직게임이었다. 그리고 SK에게 2007년 롯데는 유난히 약했다. 모두 롯데 팬들이었다.

야구 선수들이 가장 야구하기 즐거우면서도 원정으로 다가갔을 때 힘든 곳은 어느 구장일까. 소위 말하는 ‘성지’라는 마산도 그 중 한 곳이겠지만 사직은 정말 많은 원정 야구선수들, 팬들이 흥겨움과 겁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부산이라는 항구도시 속에 파도가 바닷가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원정 팬들. 그러나 사직 구장과 롯데의 팬들은 파도가 넘실대는 분위기속에 사직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축제의 장으로 만들어버리는 신기한 힘을 가지고 있다. 물론 때로는 그것이 지나친 흥분으로 표출될 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무뚝뚝하다고 알려진 부산, 경남 사나이들에게 감춰진 눈물 또한 적지 않다는 것. 그리고 생각보다 정말 정이 많다는 것. 넘실대는 파도 속에 아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려나.



스파이크 함 떠야하나.

“쿼터메인 병장. 너 야구 무진장 좋아하나 보다.” 아마 내가 군 시절 일직 근무를 서고 있을 때로 기억한다. 사실 나는 이 당시 롯데 야구를 거의 보지 않았다. 당시 감독이 롯데 팬들에게 애증의 대상인 백인천 감독이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냥 야구를 당분간 좀 멀리해야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게임은 유난히 눈에 들어왔던 것 같다. 아마 낯설은 타순과 선발진 때문에 그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 와중에 같이 일직근무를 서던 행정보급관님이 아마 내게 웃으면서 이야기를 건내셨던 것이다..

사실 군대 있던 시절 2002년은 야구팬들에게 임팩트를 주기가 어려웠던 시즌이기도 하다. 엄밀히 말하면 시즌 중에는 힘들었고, 가을에는 삼성의 첫 우승으로 정말 임팩트가 컸다고 표현하는 것이 아마 맞을 것 같다. 개막부터 시작해서 야구의 열기가 뜨거워질법한 가운데 월드컵이 열릴 것이라고 각 TV마다 월드컵에 대한 이모저모로 뜨거웠었고, 월드컵이 끝나고도 특별방송이다 모다 해서 항상 TV는 축구로 뒤덮다. 게다가 2003년에는 월드컵의 폭풍이 지나갔다고 하지만 분명 그 흔적이 남아있었고 연병장은 예전보다 더욱 축구 열기로 뜨거웠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나라는 놈이 있었으니 신기했을 법 하다. 그러나 더 재미있는 것은 그걸 바라보시는 작전 지원관님을 비롯한 경상도 남자들과 축구나 다른 스포츠가 아닌 야구에 대한 이야기로 밤을 샜다는 것이다.

“참. 롯데 억수로 몬하네.” 당시 백인천 감독의 총아로 불리던 이인구가 삼진을 당했었다. “밥 묵고 오는데 TV에서 이인구라고 해서 밤에 배구 중계가 왠일이고 했단 거 아닙니까.” 옆에 있던 고참인 김병장이 웃으면서 답했다. 김병장은 부산 출신으로 롯데 게임이 너무 답답해서 예전에 했던 방영했던 사극 허준을 시청하곤 했었다. 그러다가도 정신 줄을 잠깐 놓았다 싶어져서 스포츠 뉴스가 본인 눈앞에서 롯데가 졌다라고 나오면 분함을 매트리스에 표출했었다.

“이인구 또 스파이크했나.” 그냥 김병장이 당시에 알던 선수는 이인구였다. “금마 눈빛은 살아있는데 왜 안 될끼고. 군대가야하나.” 휴가 나가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갈마(갈매기마당)에 이인구의 눈빛이 마음에 든다고 벌써부터 팬이 된 분들이 적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사실 나 또한 군대 있던 시절 이인구라고 해서 한양대 주포이자 현대에 입단했던 배구선수 이인구만 떠올렸지 타자 이인구가 존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부분이 너무나도 우습지만 말이다.



롯데 팬의 이름으로.

대학교 친구들이나 군대시절 알게 된 선후임들을 보면서도 느끼는 부분이지만 부산, 경남 친구들을 롯데로 인해서 참 많이 사귀게 되었다. 사귀기 힘들 것 같은 친구도 롯데라는 단순한 키워드 하나라면 그저 친해질 수 있었다. 학교 친구 중에 정말 야구광인 녀석은 학교 코앞에 있는 버거킹과 맥도날드를 마다하고 롯데리아에서 먹어야한다고 설교까지 한 친구도 실제로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만큼 롯데팬이라고 자처하는 친구들은 정말 롯데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모든 이들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재미있게도 내 주변에는 그런 친구들이 눈에 띄었던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고시원에 잠시 머물던 시절도 그러고 보면 참 기억에 남는다. 학원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는 시각인 9시가 조금 넘은 무렵. 항상 MBC 이은하의 아이러브스포츠를 들으려고 했었다. 지금도 그 프로그램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 KBS 스포츠스포츠쇼에 이어서 매일같이 들었던 라디오 스포츠 프로그램은 이 프로가 아직은 유일한 듯 하다. “쿼터메인아. 니 어제 라디오 들었나?” 부산에 사는 시험 공부하던 형이 아침에 밥 먹을 때 웃으면서 묻곤 했었다. 지금도 연락하고 지낼 만큼 친한 사이인 그 형은 동생과 함께 부산에서 올라와서 고시원에서 알게 된 사이였다. 참 우연이라면 우연이다.

고시원에서 우연히 롯데 야구하는 것을 밥 먹으면서 보다가 이 형들을 알게 되었는데 친해진 이후로는(밥 먹을 때만 실질적으로 당시에는 봤지만) 항상 집에서 올라오는 반찬거리를 주곤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고기 먹을 때에도 “롯데 팬은 함께 하는기다.”라는 농담과 함께 고기도 먹었던 것은 물론이다. 그러고 보니 고시원에도 롯데 팬들이 참 많았다. 시험 공부하던 형제 중 동생인 형은 롯데 야구를 그러고 보면 참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쉬는 시간 때 항상 내려와 밥 먹을 때도 야구가 틀어져있으면 “공부하다가 기분 좋아도 시원찮을 판에 야구 보면 승질난다 아이가. 치라.(웃음)”라고 말했던 기억도 난다.

사람들은 야구장이던 어디던 인연이라는 것을 맺게 되는 것 같다. 아마 내가 다른 팀을 응원했다면 이들과 지금도 친하게 지낼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한 번씩 스쳐지나간다. 과거에 롯데가 너무 못 한다 못 한다 해서 나도 모르게 화를 내던 시절 응원팀을 바꿔볼까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항상 제자리였다. 야구를 보지 않으면 않았지 롯데를 응원하지 않는 것은 심하게 오버해서 무슨 중죄를 짓는 것처럼 느껴질 것 같았고, 부산사나이들이 소위 말하는 ‘의리’에도 위배가 된다고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난 내 피가 아직도 해운대와 송정에 펼쳐진 푸른 물 같지 못한 서울 토박이 팬이다. 그러나 내 피를 그들처럼 언제든지 정말 파랗게 할 수 있다면 난 그 길을 택하겠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롯데 팬으로서 할 수 있는 하나의 일이라면 말이다.

<사진-장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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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쿼터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