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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과세트. 부침개. 그리고 아침에 사찰 방문. 이 세 가지를 함께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마 제가 군대제대 하자마자 잠시 동안 머물렀던 고시원에서의 일이겠네요. 고시원에 있던 시절 일요일 아침마다 조별로(?) 나눠집니다. 가령 교회나 성당 가는 분들. 절에 가는 분들. 운동가는 분들로 크게 나뉜다는 게 아마 맞겠습니다. 그런데 명절은 조금 더 특이합니다. 이런 활동을 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아침 시간에 나가는 시간을 조금 늦춘다는 것이지요.
제가 있던 고시원은 가격에 비해서 시설이 굉장히 좋은 편이었습니다. 컴퓨터로 인터넷을 하는 분들도 눈에 보이고, OCN을 아침부터 쭉 보는 분들도 계시죠. 그러나 명절에는 모두 한 가지 일을 합니다. 그것도 아침에 말이죠. 바로 한과세트와 부침개를 챙기는 일이죠. 고시원 원장님께서 조금 후덕하신 분이셨는데, 설이나 추석 때가 되면 원장님 사모님과 함께 한과세트와 부침개를 정말 한가득 펼쳐놓으십니다. 그것을 원생들이 자신의 그릇에 따로 덜어가고 그렇게 해서 거의 한 주간(?)의 반찬을 채웁니다. 고시원 생활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밥 나오는 고시원에서 반찬의 중요성은 굳이 설명하시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밖에 나가서 사먹어도 되지만, 사실 수험생 신분으로 가족들에게 용돈 받아가며 밥 사먹는 것보다 무료로 해먹을 수 있는 길을 ‘평소보다 더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거 같지만, 수험생이 되면, 더 절박해진다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고시원에 있을 때 조금 기억에 남는 분이 있는데, 제가 학교 다니면서도 한 두달씩 그 고시원을 방학 때나 시험 때 머물렀기에 더 크게 그 분의 모습이 생각이 나네요.

아마 그 때도 명절 때로 기억을 하는데, 반찬이 줄잡아 40인분은 되었을 겁니다. 한과세트라던가 기타 명절음식으로 분류할 수 있는 간식거리등도 굉장했지요. 근데 제가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와 컴퓨터, TV등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생활관에서 다림질을 하고 있는데 한 여자 분이 제 눈치를 슬슬 보시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내가 있어서 불편한가라고 생각을 했는데, 몇 번 눈치를 살피더니 한과세트랑 반찬을 통째로 가지고 방으로 가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조금 기겁을 해서 “아니. 그거 다 가지고 가면 나머지 분들은 어떻게 하시라구요. 그리고 식사하실 때, 항상 본인 것만 밥공기 채우시고 밥솥 비운채로 왜 그냥 가십니까. 다들 공부하시기 바쁘신데 너무 그러시는 것이 조금 아니다 싶습니다.”라고 이야기를 건냈죠.
옆에 있던 제 친구는 좀 성격이 와일드해서 “야. 저 사람 상습인거 너도 알자나. 그냥 쌍욕을 해버릴까 보다.”하면서 설맞이 의협심(?) 발휘놀이를 하려고 하더군요. 결론은 그 여자 분이 고시원 생들이 많이 모이다보니까 그냥 그것을 적당히 덜어서 가지고 갔는데, 상황 자체는 어찌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갈수도 아니면 조금 황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죠. 더 재미있는 것은 이 여자 분이 한 시간 뒤 저희가 없을 때 아는 형이 식사를 하고 있는데 다시 내려와서 그 많은 반찬과 한과세트들을 다시금 가져갔다는 건데, 고시원 생활하면서 이런 이기주의야 사실 명절 때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공용 냉장고에 있는 반찬 그냥 먹는 건 다들 아실테구요. (그래서 저는 제 방 냉장고에만 반찬을 두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찌 보면 에이 까짓꺼 그냥 먹던 말던 냅 두면 되지라고 할 수도 있고, 사실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반찬이던 무엇이던 고시원에서 원생들 먹으라고 주는 반찬이라던가 기타 간식꺼리는 명절 때만큼은 참 사람들도 여유가 없어지는 것 같다고 느낍니다. 그만큼 지방에서 올라와서 생활하는데 부모님 손맛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명절 때만큼은 더욱 그런 것들이 각별하게 느껴지죠. 그래서 이렇게 아침을 맞이하고 종교 활동 하러 가서 또 집에서의 기분을 느끼고 다시 고시원이나 도서관으로 돌아왔던 것 같습니다.

-고시원에서 재미있는 부분 중에 하나가 소위 ‘짬’이 차면 군대처럼 밥솥에 있는 밥을 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심지어 쌀을 깨끗이 흐르는 물에 씻고 안쳐야 하는데, 주변에서 막 모라하시면 마지못해 그냥 쌀에 물만 붓고 솥을 덮어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식사하고 식탁이라던가 설거지 안하고 가는 경우도 아주 많지요. 사실 이런 이것저것 신경 쓰기 싫어서 나가서 식사하시는 분들도 굉장히 많으시기도 하죠.-
모 물론 지금은 집에서 따뜻한 밥과 함께 구정 맞이 반찬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입장에 있긴 합니다. 학교 친구들이 고시원 앞으로 나올 일 없냐고 한 번씩 문자를 주는데, 올해는 구정을 보내고 3월이 되어서야 들릴 것 같네요. 벌써 3년이 되어가는 것 같은데, 당시 명절 특집으로 영화 콘스탄틴이 개봉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들 그거 보고 왔다고 막 이야기 꽃을 피웠었는데 지금은 케이블에서 신나게 틀어주는 영화가 되었네요.
올해는 이렇게 이닝 주민 분들과 오순도순 모여서 설을 보낼 것 같습니다. 예전에 제가 글을 남기기도 했지만 저희 집은 설을 포함한 모든 행사들을(?) 음력으로 보내기 때문에 이번 구정은 제게도 정말 새로운 2008년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듭니다. 현대 문제다 모다 해서 사실 야구 사이트에 눈이 잘 안 가게 되고, 가판대에 있는 신문들도 보기 민망해지는 겨울입니다. 이 겨울이 지나면 조금 나아지려나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2008년에도 자신이 응원하는 8개 구단 팀들 선수들 모두 훌륭한 게임으로 함께 하길 바라겠습니다.
<사진-익명을 요구한(?) 고시원, neoearl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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