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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스타 박철순.(5)-마지막 회

별을 쏘다. 2007/12/26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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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마운드를 떠나지만, 항상 여러분들 가슴 속에 남아있을 것입니다.”-그의 은퇴식에서.

그리고 한국 시리즈 우승을 한 다음해인 1996년. 박철순은 정말 야구공을 놓았다. 그리고  팬들에게 선수로써 마운드에서 은퇴식으로 마지막 인사를 하게 되었다. 세월의 두께에 눌린 그의 나이 42세. 1997년 4월 29일 LG전이 끝난 후 불사조는 그렇게 한참을 그라운드를 저공 비해하다가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이후로 프로 선수라는 명함을 가지고 더 이상 공을 던지지 않았다.

사실 이 날 대개 은퇴하는 선수는 게임에 나가 한번이라도 타석에 서거나 볼을 뿌리는 경우는 우리는 보게 되지만 박철순은 달랐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존재하기도 하고 대개 팬들의 바람과 맞물려 은퇴식 하기 직전에 한 번쯤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무슨 까닭인지 박철순은 등판하지도 않았었다. 두산이 10점 이상을 내줘 승부를 뒤집을 수 없는 상황인 당일 경기. 팬들은 두산 벤치 쪽에 야유를 보냈고 게임은 흘러갔지만 그는 나서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당시 박철순은 게임에 나설 수가 없었다고 한다.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을 정도로 힘들었고 그 자신도 그런 몸으로는 아니다 싶어서 엔트리 등록을 거부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 룰에는 경기에 뛰는 선수 엔트리가 결정되면 2주간 바꾸지 못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엔트리 결정전에 사장과 단장, 감독의 권유로 볼 한 두 개라도 던지라고 설득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잠깐이라도 머무르는 시간 보다 그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낄 후배들에게 그 시간이 가길 바랬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선수로서 마지막 배려는 팬들에게 아쉬움으로 남겠지만 그런 여운 덕에 그의 모습은 더욱 간절하고 고이 포장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선수로써 마지막 모습이었다. 백넘버 21번. 그의 마지막을. 정말 마지막을 우리는 그렇게 보았다.

그 이후 박철순.

“그 당시에 144인가 143인가 나오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박철순 선수의 투혼은 나이 많이 드신 분들한테 아 저 친구도 저 몸으로 저만큼 한다면 나도 할 수 있다.”-한 TV 프로그램에서 하일성 당시 해설위원의 회상.

1991년부터 1994년까지 매년 7승 기록. 1993년 6타자 연속 삼진. 1994년 38세에 완봉승. 1995년 39세의 나이로 시즌 7연승. 1996년 40세 최고령 세이브 기록. 1997년 은퇴. 언젠가 그의 기록이라고 열거된 문서에는 이렇게 몇 가지만 나열되어 있었지만, 사실 그의 이야기는 그 누구보다 길었고, 험난했으며 의미도 있었다. 열거하기 힘든 그에게만큼 그리고 팬들에게 만큼 수많은 의미가 될 기록들. 박철순은 한 때 어깨가 상할 대로 상해서 제대로 된 스피드의 볼을 던질 수 없었다고 한다.

발을 높이 들어 올려 발이 내려갈 때의 속도와 탄력을 이용해서 몸의 회전을 이용해서 볼에 스피드를 붙였다는 이야기는 많이 알려진 이야기들. 정상인처럼 걷기조차 힘들다는 판정을 받았지만, 아킬레스건이 끊어졌다는 그 왼발을 들어 올려서 강하게 땅에 내려 꽂아 마운드를 쏘아보았다. 그리고 디스크로 세 차례의 부상이 있었던 시절에도 그는 항상 괴롭혔던 허리를 회전 시켜 볼을 미트에 밀어 넣는 집념을 보였다. 체감속도 150Km. 그런 모습을 보여주던 이가 바로 박철순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의 구속이 떨어질 무렵 팬들의 체감속도는 오히려 올라갔었다. 팔이 내려오려고 하면, 항상 어깨를 한 번씩 돌리던 박철순. 베어스에는 그가 있었다.

인간 박철순. 에이스를 위하여.

“난 코치로서 그릇이 되지 못하는 사람이다. 성격이 급한 탓에 느긋하게 지켜봐야 하는 지도자로서는 빵점이다. 한 마디로 덕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되겠다.(웃음) 타 팀에서도 지도자로서 제의가 사실 많이 들어왔지만 그럴 수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만큼 베어스는 아직도 내 마음의 고향이다. 물론 만일 정말 베어스에서 제의가 들어온다면 정말 정말 고민이 될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 고민 끝에 혹시라도 내가 수락을 했다면 나는 김경문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로서는 있을 수는 있겠지만 사실 이런 일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현재도 앞으로도 베어스에는 좋은 코치와 감독들이 함께 하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후. 2002년 프로야구 개막전 시작에 앞서 박철순은 은퇴 후 5년 뒤에 팀으로부터 팬으로부터 영구결번을 선물 받았다. 단순히 이번에는 그 동안 입어왔던 유니폼이 아닌 정장을 차려입은 모습으로 다시 그라운드를 밟았다. 그의 선수시절 등번호 21번의 영구 결번식은 그렇게 빛이 났다.

정상인으로서의 생활도 불투명하다는 진단에도 불구하고 계속 볼을 뿌려 650일만의 승리, 1500일만의 완봉승, 6연속타자 삼진, 최고령 완봉승, 한국시리즈 최고령 등판과 우승, 최고령 승리 투수 등 값진 기록 등은 스포츠 뉴스 자막처럼 그의 환하게 웃는 모습과 함께 스쳐 지나갔다.

“야구장은 내 마음의 고향이고 후배들 손도 잡고 싶었다. 하지만 오해를 사기는 싫었다. 지금 내 자신이 도전하고 다시 날아오르는 날 더 가까이 내가 자리할 것 같다.” 자존심과 자부심을 항상 갖고 있던 남자. 작은 우유팩을 한 번씩 들이키더라도 그 모습이 너무나도 멋있던 선수. 그의 이름이 바로 박철순이었다.

My way. 나의 등번호는 바로 21번.

당신은 분명 바로 슈퍼스타 감사용의 공유역의 박철순이 아닌. 정말 박철순이었다. 그리고 불사조였다. 흥건히 몸에 땀이 흐르면 그 땀을 글러브로 정말 멋있게 닦던 선수. 시간이 지나면 많은 이들이 스쳐지나가듯이 그도 언젠가는 잊혀지는 선수의 이름에 오를 것이다. 이제부터 야구를 보기 시작한 팬들이 최동원, 선동렬 같은 그 이전의 선수들을 추억하기 힘든 것처럼. 그러나 우리는 그와의 추억도 야구와 함께 할 때까지 같이 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것이 에이스에 대한 예의이고, 불사조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내가 야구 얘기를 하면 항상 잠시 동안 가만히 있다가 웃던 불사조. 처음에는 말 꺼내기 어려운 듯한 이미지를 주었지만 시간이 흘러 굳은살이 박혀 있는 손으로 장난도 쳐주며, 인사 해주었던 당신을 난 아직도 기억한다. 다른 친구들이 옆에 앉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지만, 야구를 좋아하는 내게 항상 문을 열어주었고, 정말 당시 던졌던 공이 너클볼이었냐고 물었던 내게 웃기만 했던 바로 당신. 그리고 선수이자 인간 박철순. 그는 내게 이범수가 슈퍼스타 감사용을 찍기 위해 익숙했던 오른 손대신 촬영을 위해 왼손을 택한 만큼의 깊은 의미를 가져다 준 선수였다.

그는 오직 선수 박철순으로 기억될 뿐 사실 박철순 감독, 코치로 기억되지 않는다. 그러나 내게 그리고 우리에게 아직도 불사조라는 다른 이름으로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2007년 6월 11일 시구 선정자로 선정되어 당신이 마운드에서 공을 뿌리던 모습은 분명 팬들의 추억을 자극했을 당시에도 당신은 영원한 우리들의 맏형이었다. 앉아서 공을 받으려는 김경문 감독에게 공을 뿌리던 모습은 예전의 불사조와 같은 역동적인 모습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한 마리 학을 연상시키는 듯 했다. 그것이 가운데로 들어가던 아니던 그런 부분은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 이 글은 마쳐지고, 흘러나오는 이 노래는 내가 아는 박철순과 연관된 몇 개중에 마지막 곡으로 글과 함께 끝나게 될 것이다. 음악을 글마다 선정할 때, 박철순 선수 글에 항상 슬픈 곡이 깔리는 것이 때로는 안타까워서 밝은 곡 위주로 가져가려 했었다. 항상 불사조 하면 눈물샘을 자극하는 캐릭터처럼 굳어지는 것보다는 이제 밝게 웃어줄 수 있는 캐릭터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글에는 이 노래가 아니면 안 되겠다 싶어서 살며시 틀어보았다. 그를 가장 잘 표현 해주는 대표적인 곡이기 때문이다.

이 노래가 한 번 반복될 때 이 글은 끝나겠지만, 박철순이 기억과 추억 속에 영원할 것처럼 팬들에게 박철순이라는 이름이 떠올랐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가져본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박철순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이다. 그러나 불사조를 본 팬들이 있는지 없는지 많은지 적은지 정말 모르겠지만, 이 글이 그를 회상하는 일부의 글이 되기를 조금이나마 바래본다. 사실 이 글은 그를 냉철하게 평가하기 위해서 쓴 글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 ‘박철순 시리즈’를 과장된 소설로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많은 것은 바라지 않는다. 그저 이 부족한 글이 그의 진짜 팬들과 이 글로 그를 회상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이 시리즈를 끝내면서 행복할 것 같다. 영화 ‘우리 동네’에서 “요즘 애들은 기교만 있지 순수함이 없어.”라는 오만석이 건내던 대사가 기억난다. 바로 지금 내가 쓰는 박철순 이야기에 해당될지도 아니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까지 시리즈와 달리 이 글에 나타났던 그는 분명 기교와 순수함 모두 갖춘 사내였다. 최소한 내게는 그랬다.

나는 어린 시절 자이언츠 야구로 인내를 배웠고, 박철순. 당신에게서 인생을 배웠음을 이제야 얘기하게 된다. “10년이 흐른 지금 아직도 저를 기억하시려나요 언젠가 형님 뵐 날이 있겠죠. 건강하세요. 보고 싶습니다.” 잠실야구장에 울려 퍼질 때마다 팬들의 가슴을 적셔왔던 권인하의 '에이스를 위하여'와 프랑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를 떠올리며 이제 이 글을 정말 마칠까 한다.

이 보잘 것 없는 글을 두산 팬들을 포함한 박철순 선수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바칩니다.


                                                                           당신의 기억을 담은 '어리던' 친구가.





                                                <사진-두산 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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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쿼터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