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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마다 치러지는 모의고사와 기말고사에 찌들어 있던 고등학교 3학년 시절. 학교 근처에는 항상 오락실과 말 그대로 스트레스를 푸려는 친구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고교시절 모범생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기말고사를 앞둔 모의고사가 끝난 어느 날. 친구들과 농구를 하다 무심코 오락실을 처음 가게 되었다. 주머니 속에 회수권만 쥐어지던 상황이었지만, 그날따라 친구들은 내게 100원짜리 동전을 5~6개씩 쥐어주며 한 번씩 웃어보였고 무엇에 홀린 듯이 그렇게 나섰던 것 같다. 사실 그 동전을 가지고 집에 그냥 간 적이 수없이도 많았고 그 날은 더더욱 불볕더위와 이어지면서 떨어져가는 체력으로 인한 핑계가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결론적으로 그 날은 내게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무슨 운명인지 나는 그 날 이후로 집으로 가는 많은 버스들을 뒤로 한 채 당분간 학교 앞 오락실로 향했다.
그리고 오락실을 들어섰을 때, 허름한 문 앞에 걸려 있는 발을 치우고 들어가니 무언가 안타까운 탄성을 내뱉으며 조이스틱을 거칠게 다루는 어떤 재미있는 분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실 그곳에 들어설 때만 하더라도 그 아저씨(?)를 바라보면서 설마라는 생각이 들었고 에이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하시던 게임이 끝나고 전화를 받으면서 통화를 하던 그의 목소리에서 야구선수 이름이 살며시 흘러나오자, 바로 그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박철순 선수였다. 그리고 그 때부터 예상하지 못함에 터져 나온 웃음은 생각지도 못한 채 친구들에게 정말 박철순 선수냐고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의미모를 웃음을 남기며 그렇게 좋으냐고 내 이야기에 순간적으로 귀를 모아 주었다. 당시에는 너무 흥분이 되어서, 박철순 선수를 좋아하시는 부모님께 집에 전화를 하고 싶었고 야구를 좋아하는 주변 친구들에게도 이 사실을 너무나 자랑하고 싶었다. 아니 당시 휴대폰 카메라가 있던 시절이라면, 아마 그와 사진을 찍자고 이야기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고 3이라는 것이 당시에는 왜 그렇게 안타깝고 제한 사항이 많다고 느꼈는지 아니면 당시 성격 탓인지 막상 그 앞에 다가가자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사다리 타기
당시 교내, 반내 친구들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 한창이던 시절, 사다리를 타면서 당시 유행하던 축구 오락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당시의 주요 아이콘은 고종수를 비롯한 축구 선수들이 대표적인 아이콘일 정도로 야구는 말 그대로 소외당했던 스포츠였다. 그 때부터 축구와 함께 자신의 항로를 정한 아이들이 재수를 결정한 친구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었고, 대성과 종로학원은 항상 아이들의 목표 대학 옆에 조그맣게 책상에 새겨져 있었다. 사실 평소라면 오락에 크게 흥미도 없었고, 기분 전환을 한다면 음악 듣거나, 야구 보거나, 농구하는 등으로 스트레스 풀었던 내게 아이들끼리 매치업을 짜기 위한 ‘축구 오락 토너먼트 사다리 타기’는 실제 사다리 타기보다 지루해 보였다.
그러나 그 날 이후로는 완전히 생각이 바뀌어 버렸다. 그리고 그 사다리는 그 날 이후로 워크맨을 책상 깊은 곳에 데려다 놓으면서 또 다른 낙을 만들어주었다. 그냥 친구들과 박철순 선수를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왠지 그냥 가기 수줍다는 생각에 핑계를 만들어서 가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나 보다. 학창시절 연예인이라던가 스포츠 선수에게 크게 빠져 본 적이 없었던 내게 박철순은 그런 존재였다. 학교에서 좋아하던 여자아이를 보면서도 저 아이를 한 번 더 보기 위해서 어떻게 할까라고 고민도 거의 없던 내게 어찌 보면 그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친구들끼리 술자리를 함께하며 당시 추억의 앨범을 뒤적이며 회상을 하곤 할 때, 이야기하는 A형 같은 O형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냐는 지적도 한다. 그러나 지금은 선뜻 이해 못 할 생각이지만 그를 만나기 위해 사다리를 이용해서 가면, 왠지 더 친밀해질 것 같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라는 부분이 더 맞지 않나 싶다.
조금 다른 이야기로 나는 그 날 이후로 조금 안타까운 소식을 굳이 적어 본다면 연습장의 대부분을 영단어 암기와 수학 문제로 빼곡이 풀려져있던 내게 사다리가 함께 했다는 것이겠다. 반내 친구들 전체가 붐이었던 그 사다리는 이제 친구 녀석의 마지못한 꼬임과 더움을 이기기 위해, ‘정말 오랜만에’ 학교 근처 오락실에 가는 하나의 핑계거리가 되어버렸다. 바로 그날부터 오락을 하기 위해 그곳을 가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지만, 출근부 찍도록 당분간 가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야구 팬 혹은 마니아라는 친구들은 나를 비롯한 몇몇을 중심으로 어느 순간 모두 오락실에 집결하는 아주 재미있는 광경이 벌어졌다. 베어스 팬 친구들은 롯데 팬이라는 녀석이 특이하다며 웃곤 했지만, 내게는 최동원이 아닌 선동렬, 박철순, 윤학길이 있었기에 야구를 본 팬 이여서 그런지 각별함. 그 이상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아저씨가 아닌 형님.
그 날도 저녁을 먹을 무렵 나는 항상 친구들과 박철순 선수를 베어스 팬인 친구들과 보기 위해서 오락실에 가곤 했다. 잠깐이긴 하지만, 오락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이제는 그를 보는 것 자체가 나름대로 고 3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이야 스타급 선수들을 어떻게 인터뷰하고, 약속을 어떻게 잡는지 아주 조금은 알았지만, 당시만 해도 이런 선수들은 국가에 귀속된 선수도 아니면서 청와대에 공문이라도 보내야지 만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좀 우스운 생각도 했었다. 그만큼 만나기 어렵다 못해 영원히 못 만날 것 같은 선수가 박철순 같은 거물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그는 나를 비롯한 친구들을 가끔은 의식하지 않은 것처럼 담배 한 대를 피면서 즐겁게 오락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오락을 하면서 정말 즐거운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항상 같은 오락기 앞에 그는 자리하고 있었다.
그를 처음 알아봤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처음에는 그냥 멀리서 지켜만 보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친구들 중에 베어스 팬들도 많았지만, 이야기를 해본 친구는 사실 아무도 없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가 오락실에 갔을 때 항상 동전을 바꿔서 쌓아놓고, 시간을 보내면서 친구들과 자주 만나면서도 그는 우리에게 당연하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아니, 어찌 보면 우리를 보고 다정하게 웃었을지도 모르지만, 친구들 중에서 그의 눈을 제대로 바라본 친구는 단 한명도 없었다. 전설 앞에서 전설로만 들어오는 이야기로 그저 그의 눈을 추측만 할뿐이었던 것이다.
하루는 친구 중에서 베어스 팬인 친구가 그와 너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한번은 옆에 앉아서 오락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승부에서 매번 승자가 정해져있듯이 진행과 동시에 얼마 후 매번 지는 사람 입장에서는 사실 게임을 하고 싶지가 않을 것이다. 박철순 선수를 상대로 친구가 게임을 몇 번 이겨버렸더니 그냥 집에 가버린 경우는 바로 그런 날에 해당이 되었다. 더군다나 지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익숙하고 싶지 않은 그에게 이겼다면,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조금은 속상하지 않을까라는 어린 아이 기준으로 회상도 해보았다.

물론 무언가 고뇌에 찬 눈빛으로 그곳을 찾은 그를 방해하지 않고 싶다는 생각을 친구들과 때로는 한번씩 하곤 했었다. 잠깐 동안 시간을 보내러 둥지를 찾아오듯이 다가온 그에게 지금은 DL 기간이 아닌 정말 오랜만의 휴식의 기간이 되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했던 이유는 당시 그냥 그가 지쳐보였던 모습을 매번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현대 소설에서 때와 장소가 애매할 때 쓰는 단어인 정말 말 그대로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살살해라.” 그가 내 옆에 앉았던 것이었다. 그가 아직도 나를 기억할 런지는 모르나, 결과적으로 그는 내가 살살했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날 내 실력이 부족함으로 정말 그에게 살살했던 것으로 기억을 했던 것인지 나는 그와 서로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재미있게도 그 날의 인연이 되어서 시간이 흘러서 어느 날 부터는 나는 박철순 아저씨, 박철순 선수도 아닌 형님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는 나에게 원 코인으로 이기지 않는 그 답지 않은 수모 아닌 수모(?)를 겪기도 했었다. 내가 오락을 잘해서라기보다는 운이 좋았을 때가 있었다는 것을 그도 알기에 그저 허허하고 웃고 말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와 조금씩 친해진 그는 쌓아둔 동전을 내게 건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그 와중에서도 야구 얘기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 또한 그가 있었기에 나 또한 그가 항상 즐기던 격투게임만 묵묵히 즐기곤 했었다. 그와 이야기를 하면서 야구에 대한 궁금증은 항상 있었다. 그러나 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냥 지금은 그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즐거웠고 불사조에게 무엇을 묻게 되면 날아가 버릴 것 같기 때문에 많은 것들은 묻지 못했다.
지도·조언 [指導助言]“그러고 보니 넌 몇 학년인데 오락실에 오냐.” 그가 나와 조금씩 친해지면서 언젠가 문득 건냈던 이야기이다. “고 3인데요.” 그가 웃었다. “너가 알려나 모르겠지만 난 너 만한 아들이 내게 있는데, 공부할 시기에는 스트레스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다. 넌 월드컵 안보냐? 아. 너 고 3이랬지.” 그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자라온 환경과 더불어 조언해주곤 했다.
그는 그 더운 여름 날, 우리나라가 멕시코전에 3대 1로 지고 있던 와중에도 관심이 없는 듯이 이미 ‘나의 단기간 슬럼프를 탈출 교정 투구 폼’을 완성시키기 위한 코치가 되어 있었다. “임마. 목숨 걸어서 공부할 자신 없으면 그만두는 것이 낫다. 후회 없이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해. 괜히 근성 근성 하는 게 아니라고.” 그의 이야기에는 여운보다는 마침표가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살아온 신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마침표는 시간이 흐르면서 언젠가 자리를 잡기 위한 연습피칭을 하기 시작하듯 그와의 이별을 예견했다. 그와 친해졌다고 생각하고 나서, 그는 이제 나와 서로 인사를 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그와의 이별을 생각하니 아쉬움이 항상 있었다. 처음에 문득 한 번씩 공부는 많이 했냐라고 건내던 그의 이야기는 정말 공부를 많이 했냐는 이야기보다는 인사에 가까웠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정말 진심으로 이것저것 물으며 이야기해주던 기억도 난다. “아저씨는 담배 피는데, 넌 담배피지 마라. 오늘 게임 되게 안 되네.” 그는 항상 웃으면서 반겨주었다. “아. 그리고 아저씨라고 부르지마. 그냥 형님이라고 불러라.” 그냥 나는 웃었다. 고교생이던 내가 처음으로 형님이라고 부르던 인물이 바로 박철순이었다.
사실 그와 내가 만나서 이야기한 시간은 열흘에서 보름 사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내가 학교에서 이래저래 담임선생님 이야기가 길어지는 날이면, 그 짧은 기간 동안 그는 밖에서 나를 기다린 적도 있었다. 난 그에게 야구팬이라고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나를 처음 봤을 때, 야구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친구들이 박철순 형님을 처음 봤을 당시 가장 좋아할 것 같은 녀석으로 먼저 내 이름을 얘기했기 때문이 바로 그 이유란다.
“너 어디 팬이냐?” 어느 날 그가 오락하면서 묻던 이야기이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베어스 팬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던 것인지, 아니면 서울 사람 같이 않았던 것인지 그도 아니면 그냥 막연하게 물었던 것인지 잘은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전자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희안한 녀석이네. 근데 너 어떻게 베어스 야구 선수들에 대해서 잘 안다며?” 아마 그가 그저 어린 녀석이 야구에 대해서 옹알이 하는 수준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신기해보였나 보다. 그만큼 형님은 내가 이야기하는 한마디 한마디에 신기해하고 재미있어 해주셨다.
그리고 처음에는 야구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나도, 그에게 이따금씩 묻곤 했었다. “형님. 너클볼 진짜 던지셨어요?”, “야. UFO가 있다고 믿냐, 없다고 믿냐.” 당시에는 너클볼을 진짜 던졌단 얘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산타 클로스가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고, UFO가 존재할 것이라고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녀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철순이라면, 너클볼을 던져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설령 UFO는 존재하지 않더라도, ‘박철순의 너클볼’은 존재할 것 같았다. 당시에도 지금도 내 앞에 있던 박철순은 너클볼을 던지던 팜볼을 던지던 말 그대로 리얼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진-두산 베어스, 슈퍼스타 감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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