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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터메인's mentalgame

옛 앨범을 되돌아보며.(1)-염종석

별을 쏘다. 2007/11/1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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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이른 얘기이지만 지금 시점에서 하나씩 꺼내볼까 합니다. 개인적으로 많은 야구에 관련된 글들을 좋아하지만 선수들에 대한 추억을 돌아볼 수 있는 앨범식 글도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기사로 보낸 글들도 그런 글들이 몇몇 포진되어 있습니다. 솔직히 이런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조금은 우습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보다 훨씬 많은 글들을 쓰신 분들, 친구들, 그리고 많이 아시는 고수 분들 앞에서 주름잡는 이야기로 비춰질까봐 걱정 아닌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야구팬이 추억만 먹고 살수는 없지만, 그 추억과 감동, 당시의 행복을 간직하는 것 또한 소중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과거의 스타들도 소중한 것처럼, 현재의 스타(단순히 스타플레이어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야구를 사랑하는 이들)의 그림을 그리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다시는 공을 제가 못 던져도 좋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작년 시즌이 끝나고 그리고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썼던 글들이 몇 개 있습니다. 박철순에 대한 이야기, 신명철에 대한 이야기가 그것이겠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블로그 수준에만 머무른 글이었던 정영일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다행히도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많은 이대진, 염종석, 김한수, 호세, 김진수 이야기는 기사로 올해 포털 사이트에도 운 좋게 실리게 되었습니다. 좀 기억에 개인적으로 많이 남는 글은 제가 롯데 팬이라서 그런지 염종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글은 많은 팬 분들이 눈이 내리는 겨울에 서로 돕고 생각해주는 온정이 담긴 느낌을 개인적으로 받을 정도로 색다른 추억을 선물한 글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덕에 술자리에서 ‘경남, 부산 형님들’께 공짜로 술을 먹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팀 선수 중에 한명이 갑자기 와서 고맙다고 한 기억. 일부 팬 분들이 우는 모습을 지켜보던 기억. 모두 염종석 선수 글을 기재하고 나서였습니다. 뒤에 쓰게 될 김한수 선수에 대한 글 마찬가지구요. 당시에는 그냥 그랬던 것 같습니다. 지금보다 더 멀어져가는 그들에게 무언가 선물을 해주고 싶었고, 솔직히 지금 이렇게 무너지면 안 되는데 라는 생각 말이죠. 물론 사회가 그리고 구단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죠.



그래서인지 오늘은 그 많은 이야기 중에서 염종석 선수 글을 쓰게 된 관련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연재식이기 때문에, 제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계속 이어나갈 계획입니다. 염종석은 많은 팬들께서 기억하시는 대로 1992년 롯데 팬들이 기억하는 바로 그 시대를 정지시켜버린, 그리고 그 시대에 가둬버린(?) 롯데 자이언츠의 스타플레이어입니다. 물론 스타플레이어라는 정의 자체는 제 개인적으로는 정의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염종석이라는 선수는 롯데자이언츠의 스타플레이어로 평가받을지, 롯데 자이언츠 ‘팬들의’ 스타플레이어로 평가받을지는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탯으로만 평가를 한다면, 염종석은 훗날 많은 팬들에게 기억보다 ‘추억’에 가까운 선수로 남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그에게 ‘스타’라는 칭호를 앞에 붙였던 것은 그가 많은 이들에게 당시에 많은 롯데 팬들에게 선물 그 이상을 해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염태지’.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이 국내 가요계를 접수하고 있을 당시, 저는 아주 어린 학생이었습니다. 나이가 조금 들어서 대학에 진학하게 되어, 부산, 경남 쪽 친구들과 이 얘기를 우연히 하게 되었는데, 염태지 신드롬이라고 할 정도로 염종석의 인기가 대단했다고들 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과장인지 아닌지는 저 또한 가늠하기는 힘들지만, 그냥 막연하게 기분이 좋기는 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이미 그는 꽃이 되어 있었다.

원래 원 제목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이미 그는 꽃이 되어 있었다.’였는데, 데일리안에서 알아서 고쳤더군요.(웃음) 글 내용도 사실 수정한 부분이 몇몇 있었습니다. 사실수정이 아니라, 말 그대로 내용을 고친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좀 많이 아쉬웠었습니다.(웃음) 김한수의 글도 그렇고...그래서 호세 글부터는 선수 이야기를 기재할 때, 데일리안 쪽에는 송고를 하지 않았습니다.(큰 웃음;;)

한 때 롯데 자이언츠인 공식 홈페이지인 갈매기마당을 포함한 8개 구단 팬들이 많이 모인 사이트이고, 정돈된 사이트에서도 사실 염종석 선수 이야기에 대한 욕설과 비난이 끊이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단순한 안타까움도, 그리고 때로는 자극적인 질책도 필요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도가 지나친다고 판단이 들었고 그때마다 참 안타까웠습니다. 그냥 그 이후로 그런 생각 속에 우선 글을 쓰고 제목을 설정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썼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자료도 다시 모으고, 잘 기억이 나지 않던 부분은 무한적으로 영상을 돌려봤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제 수첩과 핸드폰에는 ‘염종석’이라는 선수에 대한 저만의 느낌과 생각. 그리고 팬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담으려고 했습니다. 순간순간 음악을 들으면서, 이 글에 이런 음악이 깔리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곡을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성시경의 ‘거리에서’를 지속적으로 들으면서 항상 워드를 치기 시작했었습니다.



첫 테잎은 염종석이 아닌 박충식과 조성민.

살다보면 자신이 생각했던 계획과 틀어지는 일은 부지기수인 것 같습니다. 예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시즌 개막을 앞두고 신문사에 송고하려던 글들은 박충식과 조성민의 글이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일이 생겨서 이 두선수의 글 대신 염종석이라는 선수의 글이 실렸습니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이 글 또한 글을 보낸지 일주일 만에 포털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걱정도 되더군요. 제가 성격이 조금 여린 편이라, 악플 들이 달려 있으면 참 슬퍼질 것 같더라구요. 친구들 이야기로는 외모와 따로 논다고들 하는데, 하여간 그렇습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면서 같은 팬들과 함께 울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럼으로 인해서 이 선수로 인해서 우리가 알고 있던, 모르고 있던 그 추억들, 행복감의 포근함으로 다 같이 하나가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김한수의 글도 마찬가지고, 나머지 글도 마찬가지구요. 어느 팀의 팬이 아닌, 야구를 좋아할 수 있는 팬으로 그때는 돌아가 보고 싶었습니다. 가능할까가 아니라, 가능하게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언젠가 올해 썼던 글들의 이어지는 내용을 계기가 된다면 써볼까 합니다. 실제로 올해 썼던 선수들의 글들의 그 다음 이야기를 시간 나는 대로 쓰고 있었습니다. 그 시간이 언제가 될까요. 솔직히 지금은 지쳐서 빠른 시일 내라고 장담은 못 드릴 것 같습니다. 제가 당분간 야구 사이트 운영자로서 머물고 있는 동안, 그리고 야구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는 동안에는 이닝에 많은 추억을 남기고 가보려고 노력해보려 합니다. 부족하기만 한 글이지만,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빠른 시간 내에 알찬 내용으로 다가가길 진심으로 바래봅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제가 필요하다고 불러주시면 등판할 것입니다. 1992년 당시 그때 그렇게 던진 것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저는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그때처럼 다시 던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저는 그때 너무 행복했습니다.”(당시 기사에서.)

<사진-inning.co.kr, 롯데 자이언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전에 ,이미 그는 꽃이 되어 있었다.(上)

http://nathan21.tistory.com/category/야구,냉정과%20열정?page=48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전에 ,이미 그는 꽃이 되어 있었다.(下)

http://nathan21.tistory.com/category/야구,냉정과%20열정?page=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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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쿼터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