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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터메인(Quatermain)입니다. 과거에 클러치히터라는 닉네임으로도 인사를 드렸었는데, 조금 유니크한 닉네임을 찾다보니, 이 닉네임을 사용하게 되었네요. 영화 ‘젠틀맨 리그’에 나오는 마스터 헌터 ‘숀 코너리’에게 영감을 받아 이 닉네임을 짓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유치할 수 있지만, 재미있게 봤고, 쿼터메인이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굉장히 호감을 가졌었거든요. 괜찮은가요? ‘클러치히터’라는 닉네임은 조금 흔한 닉네임 같아서, 정말 고심하고 지었습니다.
어린 시절, 선동렬의 해태 타이거즈는 강팀 그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이래저래 티비를 통해 당시 해태 타이거즈의 절대적 전력 속에서 치뤄지는 야구를 지나가면서 보게 된 것이 제가 프로야구와 인사하게 된 처음이었습니다. 검은 바지와 붉은색 상의를 입은 선수들을 보면, 왠지 모를 위압감이 들었던 것은 바로 이때 였습니다.
선동렬 선수(現 삼성 라이온즈 감독)는 선수들이 안타치고 도루 하려는 모션을 취해도 끄떡없이 던지고, 얄미울 정도로 표정 변화 없이 K를 찍어 나가곤 했습니다. 그런 선동렬 선수가 조아서 야구를 처음 접하게 되었고, 승리할 줄 아는 해태가 좋아서 해태를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응원했습니다. 거포라기에는 너무 재능이 많았던 김성한과 이순철, 김종모, 조충렬, 이건열, 장채근, 이강철, 문희수, 김정수 등의 초호화 선수들이 이끄는 해태는 항상 부러운 대상 그 자체였습니다. 해태 유니폼을 입은 송유석 선수가 공을 던지면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그 공은 마구 수준으로 보였고, 장채근 선수의 백업으로 출전하던 정회열 선수는 너무나 커보였습니다. 이기는 방법을 아는 팀, 제 기억에 그 팀이 바로 해태 타이거즈였습니다.

어린 친구에게 모든 팀은 강팀이었다.
당시 강팀이 해태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과 맞설 수 있는 전력의 용맹한 사자군단. 삼성 라이온즈도 항상 좋은 성적으로 팬들에게 보답했었습니다. 장태수, 강기웅, 김성길, 구윤, 이종두 선수와 함께 삼성 경기 볼 때마다 생각나는 김상엽, 김성래, 이만수, 박승호 선수로 제게 회자되는 당시 삼성도 참 강팀 중에 하나였습니다. 박충식, 양준혁이 가세하고, 이승엽, 김한수가 팀 타선에 가세할 때도, 이 팀에 대해서 느끼는 ‘강팀’이미지는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타선이 아무리 예전 같지 않다고 해도 말이죠.
삼성과 좋은 경기를 벌이던 빙그레 이글스도 빼놓기 힘드네요. 달리는 야구의 진수를 보여주었던 선수 중 한명인 이중화와 송일섭, 유승안, 이정훈, 이강돈, 장종훈, 강정길, 당시 신인이던 강석천, 기대받던 조양근 ,대주자 지화선, 성균관 선수까지 버티던 이 팀도 엄청난 화력은 볼만했었습니다. 송진우, 홈런 공장장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지만, 인기 스타이던 한희민, 한용덕 등으로 꾸려진 안정된 마운드도 이 팀을 더욱 매력있게 했었죠.
물론 박정현, 최창호, 김일권, 김바위, 김동기, 원원근, 김경기 등이 버티는 태평양과 박철순, 윤동균,박노준, 신경식, 김형석, 최동창, 김경문등이 이끄는 OB 베어스, 김건우, 김재박선수, 김상훈, 노찬엽, 김용수의 엘지 트윈스(당시 MBC 청룡)도 야구를 처음 접하는 한 어린아이의 눈에는 신기해보였고 대단한 팀들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신기하기는 했지만 ‘특별’하지는 못했나 봅니다. 왜 그랬는지 과거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곰곰이 생각해보니 알 것도 같습니다.
물론 그때도 롯데라는 팀이 확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생각이 있기에 이 팀에 대해서 제가 아는 것이라고는 어머니 손을 잡고, 주말에 찾는 백화점 기업이 운영하는 팀이라는 것이 전부였을 정도로 관심도 크게 없었습니다.

고독한 황태자 윤학길
집이 서울이고, 서울이 좋았고, 부모님 또한 모두 부산, 경남과는 전혀 인연이 없으신 분 들입니다. 한화 이글스를 좋아하시는 친척 분들이 많고, 엘지 트윈스를 좋아하는 사촌 동생들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저와 롯데 야구를 보시다가 베어스의 팬이 되셨습니다. ‘태평양을 응원하자’라는 친구의 말에 인천은 우리 집에서 멀어서 싫다 라고 말했던 엉뚱한 어린 아이였습니다. 베어스와 청룡을 응원하자니, 남들과 같이 가는 것이 싫었습니다. 서울에 사는데, 제 주변 친구들과 다르게 가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저에게 야구는 그냥 ‘우표 모으기’만큼 ‘단순 취미’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지금보다는 더 편하게 즐겼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이랑 학교 공터에서 테니스 공으로 야구 하던 어느 날 제가 응원하는 야구팀을 결정적으로 바꿔놓는 선수를 알게 됩니다. 프로야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롯데 팬들의 legend. 상대 타자들을 쓰러뜨리며 전광판에 홀로 0을 찍으면서 고군분투하던 고독한 황태자 윤학길 선수를 알게 되었던 것은 어찌 보면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니 손을 잡고 가끔 가던 롯데 백화점 을지로 본점에서 선동렬 선수와 윤학길 선수가 맞대결을 하는 경기를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이길 때도 있었지만, 상대팀 에이스들과 맞붙는 윤학길 선수는 제가 보는 경기에서 패배를 기록하고는 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투구를 하고도, 얼굴 색 하나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닝이 끝나면 자신의 어깨를 한두 번 돌려주고, 그대로 덕아웃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10살 자리 아이는 그 자리에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이 선수가 혹여나 마운드에서 쓰러지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단순한 생각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크리스마스카드에 ‘윤학길 아저씨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이기게 해주세요.’라는 내용을 적어서 머리맡에 두고 자기도 했습니다. 제가 보지 않는 경기에서 그가 잘못될까봐 나올 때마다 시간 나는 대로 지켜봤습니다.
언젠가부터 백화점 가는 날은, 윤학길 선수가 나오는 장면을 티비로 어디에선가 볼 수 있는 날이 되었고, 백화점 안에 있는 롯데리아 햄버거는 윤학길 선수 경기가 끝나면,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찾을 수 있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선수 한명이 제가 응원하는 야구팀을 만들어주었습니다. 1번 타자 최계영 선수 부터 9번 박영태 선수까지 타선은 왜 이리 답답할까 라고 느끼던 시절이었습니다. 최동원이 누군지도 잘 모르면서, 그렇게 빈타에 허덕이던 팀을 야구장에 가서 응원했습니다. 윤학길 선수가 뛰던 팀이었기 때문입니다.
윤학길 선수를 본 것을 계기로 생각이 ‘롯데 자이언츠’ 중심으로 점점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꼴찌를 하더라도 근성 있고, 팬들이 변함없는 응원을 보내주시는 롯데 팬들. 특히 경기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피칭은 완벽하게 해주려고 노력하는 윤학길, 김청수, 서호진,박동희, 박동수 선수들은 제게 소중한 선수였습니다. 데뷔 초 패전처리 비슷하게 올라오는 안창완 선수가 올라오면, 그에게 더욱 힘내라고 외치고는 했습니다.
끝까지 좋은 매너를 보여주던 김민호, 정구선, 한영준, 오대석, 한문연, 허규옥, 최계영, 유두열 그리고 이종운과 김응국, 삼성과 롯데의 장효조. 모든 선수들이 그라운드 안에 있을 때 그 경기를 패배해도 저는 잠실구장이 떠나가라 부산갈매기를 부르며 응원을 했고, 주변분 들이 자이언츠를 응원하는 저를 이해하지 못해도 롯데를 이해하려 했습니다.
인생의 그라운드
롯데의 성적은 88담배가 유행하던 시절을 떠올릴만한 성적의 연속이었습니다. 야구 보면서 다른 롯데 팬 분들도 마찬가지시겠지만 저 또한 스트레스 많이 받았습니다. 세상이 힘들 때, 야구장에 갔습니다. 윤학길 선수의 강판과 은퇴는 제게 눈물이 되었고, 박정태 선수의 부상은 제게 시련이 되었으며, 그의 재기는 제 한 해동안의 소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매년 강팀으로 분류되던 삼성과의 대결에서 절망에 빠져있던 저를 일으켜준 호세는 홈런으로 대답을 해주었고, 마해영 선수의 투혼은 제게 감동이 되었으며, 손민한 선수의 재기와 승리는 저의 승리였습니다.
‘윤학길' 선수가 없는 그 자리에는 많은 선수들이 메웠지만 그래도 ‘염종석’, ‘박정태’ 선수는 항상 기억에 남습니다. '염종석' 선수는 지친 팬들을 다독여 주었고, '박정태' 선수는 단순히 선수가 아닌 정태 행님으로 롯데를 져버리지 않게 해주었습니다. 극적인 재기로 희망을 던져주었고, 꾸준한 등판과 연속안타로 제게 확신을 주셨습니다. 특유의 ‘자이언츠 근성’이라는 단어를 표현하는 세 글자로 각인시켜 주었습니다.

제가 짧은 시간 살아오면서 아마 이것이 아직까지 굽히지 않는 소신이라면 소신일 것이고 고집이라면 고집일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자이언츠가 당시에도 지금도 너무 좋습니다. 응원하는 야구팀을 바꾸는 것을 단 한 번도 생각 안 해 봤고, 그럴 바에는 야구를 안보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창시절, 롯데를 응원하는 서울 친구들이 전교에서 5명도 안되어서 혼자 응원하면서도, 고독함을 즐겼습니다. 윤학길 선수가 느꼈던 고독감과는 조금 다르겠지만 행복했습니다. 롯데의 타자나 투수들에 대해서 대충이나마 아는 주변 야구 친구들도 거의 없었습니다. 가득염선수가 롯데 클린업에 들어가는 선수라고 알고 있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제가 살아온 환경이었습니다.
롯데리아
친구들과 맥도날드와 롯데리아가 있어도 자이언츠 선수들이 롯데에 몸담고 있는 팀이기에 롯데리아를 다녔고, 백화점을 가도 롯데백화점, 할인 마트를 가도 롯데마트를 갔습니다. 롯데 선수들이 아프면 제 자신이 아픈 것 같았고, 롯데 선수들이 나오는 기사는 하루에 세 번씩 보고는 했습니다.
제가 게임을 보면 지는 징크스가 있을 때 일부러 신문으로 결과를 확인한 적이 수도 없이 많았고, 응원석에서 이렇게 열광적으로 응원하면 혹여나 선수들이 부담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생선도 못 먹고, 바닷가를 무서워하던 제가 생선이 없으면 식사를 못하고, 해운대와 송정이 좋아졌습니다. 스포츠에 전혀 관심이 없고 해산물을 못 먹던 제가 변하게 된 것은 윤학길 선수와 롯데의 야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노준, 신경식 선수에게 최종 시험을 받다?
초등학교 때 이모님 사진 전시회를 갔다가 이모님과 친분이 있으시던 당시 최고스타 OB 베어스의 박노준 선수와 신경식 선수를 뵙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물음에 ‘베어스도 좋아합니다’ 라고 말씀을 드렸을 텐데, 뒤돌아보니 웃음도 납니다. 저에게 좋아하는 팀이 어디냐, 야구 조아하냐 라고 물으셨을 때 어려서 그랬던지 ‘롯데가 제일 좋아요. 윤학길 선수와 김민호 선수가 제일 조아요’ 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두분이 웃으시면서, 이모님 사진에다가 싸인을 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커서도 야구 꼭 보라는 얘기도 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도 야구를 보고 있습니다.
어렸을 적, 붉은 OB베어스 점퍼를 입던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친구들이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던 롯데 자이언츠 어린이 점퍼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입단을 앞둔 박동희 선수가 강팀들을 이겨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TV에서 중계를 안해주면, 라디오로 그렇게 저와 야구는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활이 즐거웠습니다.
성적 지상주의? 네버
롯데가 연패를 해도 저는 롯데를 응원할 것 같습니다. 제 아이들이 생기면 그 아이들에게 제가 어렸을 때처럼 자이언츠 점퍼를 입혀주고 같이 야구를 보러 갈 것 같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제가 느꼈던 부분들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제 책상 앞에 있는 ‘윤학길’, ‘박동희’, ‘염종석’, ‘박정태’, ‘펠릭스 호세’ 선수의 싸인 볼을 보여주면서 말이죠. 롯데 팬들이 이대호 선수라고 하지 않고, ‘우리 대호’라고 하는 것 처럼 저는 정감 있는 롯데가 좋습니다. 인생의 홈런, 롯데와 함께 만루홈런을 치고 싶습니다.
<사진-장원석>
-이닝(inning.co.kr)에는 '강팀 롯데가 되기를'이라는 제목으로 기재했습니다. 2006년 기재한 롯데 팬들은 그래도 '자이언츠'와 함께 갈 것입니다 를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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